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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종택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0輯
발행연도
2014.11
수록면
67 - 9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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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중원고구려비 발견이후 구조적으로 고구려 고분과 유사한 고분이 남한지역에서 간헐적으로 조사되었다. 1988년 몽촌토성에서 고구려 유적과 유물이 조사되면서 남한지역 고구려 유적에 대한 조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한강북안의 아차산 일원에서 20여개소의 고구려 보루가 확인되었고, 1997년부터는 발굴조사가 시작되었다. 1999년에는 임진·한탄강유역과 양주분지에서 다수의 고구려 관방유적이 확인되었으며, 이후 금강유역에서도 고구려 산성이 발굴되었다. 최근 2000년대 이후 고구려 토기가 부장된 고분의 조사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고구려 고분군의 주변에서는 취락유적이 조사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남한지역 고구려유적의 조사현황을 살펴보고, 고구려 남진의 물적 증거인 고분과 관방유적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검토한 후 향후의 연구를 전망해보았다.
남한지역에서 고구려유적이 조사되고 연구된 것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상당한 연구 성과를 거둔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남한지역에서 조사된 가장 이른 시기의 고구려 유물은 파주 주월리유적에서 출토된 구형호 등으로 4세기 후엽 또는 4세기말로 편년된다. 그 다음으로는 세장방형묘실의 횡혈식석실분으로 5세기 중엽 경에 해당된다. 5세기 후엽에는 장방형 묘실의 횡혈식석실분이 축조되었으며, 아울러 몽촌토성과 대모산성, 남성골산성, 월평동유적, 은대리성, 당포성 등도 이 시기에 해당된다. 이후 6세기 전반에는 한강 북안의 아차산일원에 고구려 보루가 축조되어 551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양주분지와 임진·한탄강유역의 보루들도 대체로 5세기 중반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이해되나 폐기시점에 대해서는 추가의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통해 볼 때 고구려는 4세기 후반 이후 북한강 상류와 남한강상류를 통해 충주지역으로 진출하였는데, 연천 강내리고분군과 춘천 방동리 2호분 및 충주 두정리고분군과 같은 세장방형 고분은 고구려의 충주지역 진출 및 영역화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475년 한성공함이후 고구려군은 몽촌토성에 주둔하고 진천과 청원, 대전으로 진출하였으며, 점령지에 대한 영역화를 시도했던 것으로 이해되는데, 5세기 후엽 이후의 장방형고분들은 이러한 영역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고분들 인근에서 고구려의 취락유적이 속속 조사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볼 때 고구려가 남한지역에 대한 영역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였으며, 일정기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남한지역 고구려유적 조사현황
Ⅲ. 남한지역 고구려 관방유적
Ⅳ. 남한지역 고구려 고분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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