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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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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白種伍 (韓國交通大學校)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0輯
발행연도
2014.11
수록면
221 - 25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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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原지역 고구려 유적과 유물은 충주를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남한강과 금강, 그리고 이 두 강으로 합류하는 지천과 연결되는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다. 각 유적과 유물은 고구려가 5세기 후반이후부터 추진한 남진정책을 통해 세력과 영역을 확장해 나갔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중원문화의 형성에 있어서 고구려의 영향이 미쳤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성곽은 고구려가 육로와 수로 중심의 교통로를 이용하여 신속한 이동이 가능한 지역 가운데 군사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지점을 선별하여 관방체계를 구축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영역을 확장시켰음도 확인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묘제로 대표되는 장제와, 주거지를 비롯한 시설과 유물 들이 전파되었을 것이다.
중원지역에서 확인된 고구려 관계 유적과 유물의 편년은 대체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경의 짧은 시기에 해당하는데, 고구려의 남한강 수로를 이용한 남진 정책은 커다란 군사적 성과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적과 유물로 보아 충주 지역에 집중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은 고구려가 남한강의 교통로를 이용하여 충주지역에 안정적인 배후 거점을 마련하였고, 고구려 남진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핵심 거점으로 인식하였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고구려비의 건립 등 적극적인 관련 정책을 펼쳤던 것이며, 비록 짧은 기간이었으나 고구려는 문화전파 내지는 이식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기 때문에 고구려식의 묘제가 축조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고구려가 이 지역을 상실한 이후에도 그 문화적 영향이 일정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中原地域 高句麗 遺蹟 遺物의 現況
Ⅲ. 中原地域 高句麗 遺蹟 遺物의 檢討
Ⅳ.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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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참고문헌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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