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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은선 (대전시립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83 · 284號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55 - 8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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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石獸란 石羊, 石虎, 石馬의 동물석을 말한다. 石獸는 왕릉을 수호하고 있는 가장 웅장한 조형물로 ?邪와 吉祥을 상징하고 있다. 그 중 石羊, 石虎는 왕릉 陵上 上階에 배치되며 봉분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총8마리를 배치한다. 시선은 봉분을 등지고 바깥쪽을 향하면서 外護하고있다. 이는 죽은 왕과 가깝게 배치하여 재앙을 막는 ?邪의 역할을 강조한 배치이다.
조선 왕릉 石獸는 전체 石物의 조영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로인해 중국과 비교가 가능하다. 가장 유사한 사례가 중국 명대 초기 개국공신인 李文忠(1339~1384) 岐陽王陵과 徐達(1332~1385) 中山王陵이다. 즉 조선 왕릉 石物은 의례상으로는 皇帝陵보다 낮은 諸王陵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명대 諸王陵처럼 신도 좌우에 石物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陵上 위에 陵主 가까이 배치한 점이나 石獸 수량이 2배로 증가한 점, 규정에 없는 장명등과 병풍석, 난간석 등을 설치한 점은 조선만의 고유한 특성이다. 즉 조선왕릉은 元代를 근간으로 한 공민왕릉과 明代의 영향을 받았지만 石物의 수량과 배치, 새로운 종별의 추가 등은 통일신라와 고려의 전통적인 문화를 결합시킨 것이다.
石羊의 도상은 立像이고, 상징성은 孝와 吉祥을 의미한다. 무덤내부에서는 하늘과의 소통을 위한 제물로서의 희생, 묘주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기 위한 승천, 악귀를 물리치는 神獸를 상징하기도 한다. 石虎의 도상은 ?像이고, 상징성은 ?邪와 鎭墓를 의미한다. 악귀를 물리치는 鎭墓獸로서의 역할이고, 무덤을 수호하는 용맹한 神獸로 확대되었다. 石馬의 도상은 立像으로 상징성은 하늘로의 昇天, 守護를 상징한다.
조선 왕릉 石獸는 양식의 변천에 따라 총5기로 분류되는데, 세기별로 나눌 수 있다. 15세기는 왕릉 石獸의 도상이 정립되고 典範이 되는 시기이다. 태조 健元陵(1408)의 石獸가 대표적이며 자연스러운 신체비례와 부드러운 곡선미가 특징인 시기이다. 16세기는 거대화되어 위압적이고 조각이 돌출감이 높아 활기차다. 孝陵(1545) 石獸와 명종 康陵(1567) 石獸가 가장 대표적이며 ?邪와 守護의 상징성을 극대화시켰다. 17세기는 양감은 평면적이고 도식화가 심화되지만 반면, 세부묘사는 구체화되면서 윤곽이 또렷해진다. 仁敬王后 翼陵(1681)과 顯宗 崇陵(1659)이 대표작이다. 18세기는 문예부흥시기로 사실주의 양식이 유행한다. 사도세자 隆陵(1789), 正祖 乾陵(1800) 등이 대표작인데, 신체비례는 안정적이고 표면은 세련된 곡선으로 유연하며, 세부는 치밀하고 감각적이다.
조선 왕릉 石獸는 吉祥, ?邪, 守護를 상징하고 있어 왕릉 石物 중 최고 권력자의 권위와 위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즉 조선 왕릉 石物은 왕실 석조 예술의 정수로 중국의 영향과 우리나라의 고유성이 결합하여 창출된 독특한 미술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 왕릉 石獸의 배치
Ⅲ. 조선 왕릉 石獸의 도상과 상징
Ⅳ. 조선 왕릉 石獸의 양식 변천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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