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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사회 (선문대)
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29輯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81 - 105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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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대한제국기 석하(石下) 김만수(金晩秀; 1858~1936)의 사행록에 대한 연구이다. 그는 광무5년(1901) 3월 16일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프랑스 현지에 가서 외교활동을 하다가 돌아왔다. 그 과정을 《일록》과 《일기책》에 남겼다. 그리고 등록(謄錄)으로 짐작되는 《주법공사관일기》이 있다.
이들 자료를 살펴보면 김만수가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사행을 다녀온 모든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김만수가 주불공사로 임명된 것은 당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탈 행위를 서구 열강의 힘과 견제를 활용하여 국권을 유지하고자 했던 조선 정부의 외교적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만수와 일행은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하여 중국의 상해와 홍콩 등을 거쳐 월남의 사이공과 스리랑카의 콜롬보를 경유하여 홍해와 수에즈운하를 지나 지중해에 있는 마르세유를 통해 프랑스 파리로 들어갔다.
반면에 돌아올 때는 파리에서 베를린을 지나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가서 한 달을 머물다가 우크라이나 오데사항으로 가서 터어키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왔던 길을 되돌아 왔다. 한성에서 파리까지 가는데 61일, 돌아오는데 81일 걸렸다.
김만수의 사행록은 편년체의 일종인 일기체로 기록되었다. 그의 사행록은 일기체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여정이 잘 드러나고 서술 내용이 명쾌하게 이해되는 특징을 지녔다. 김만수의 사행록은 조선시대 이래로 내려왔던 연행록의 문예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행록에서 가장 띄는 점은 그의 문명 담론이었다. 그는 유가적 관점에서 서구의 근대 문명을 파악하여 평가하는 특징이 있었다. 서구의 근대 문명과 기술에 대해서는 이용후생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사행록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가 수행했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집약된다. 하나는 외교관으로서 세계 각국의 인사들과 교유하며 외교 활동을 벌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정세의 추이를 살피며 정보를 수집한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광무5년(1901) 김만수의 주불공사 임명과 세계 기행
Ⅲ. 김만수 사행록의 서술 시각과 내용 분석
Ⅳ. 맺음말
【參考文獻】
<Abstract>

참고문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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