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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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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54집
발행연도
2010.2
수록면
153 - 186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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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 武帝(464∼549)는 天監 원년(502)에서 太淸 3년(549)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梁을 통치하였다. 菩薩戒를 받은 `菩薩戒弟子` 皇帝로서 武帝의 통치는 중국 역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佛敎的 색채가 강하였다. 그는 여타 崇佛皇帝와 달리 불교 경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몸소 불교 계율을 엄격하게 지켰으며, 大乘思想을 統治行爲로까지 발전시켰다. 同泰寺는 바로 숭불황제 무제의 奉佛行爲가 이뤄지는 空間이었다. 造營 기간만 5년 이상 걸린 梁 都城 建康城의 최대 황실 사찰인 同泰寺는 大通 元年(527) 完成되었다. 그런데 同泰寺는 都城 內 位置, 寺院의 平面 設計 및 建築物, 그리고 正殿에 모셔진 尊像 등 몇 가지 방면에서 同時期, 혹은 隋唐代 寺院과는 區別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本考는 이런 특징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同泰寺의 設計者인 武帝의 佛敎思想과 統治思想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첫째, 同泰寺는 宮城의 앞쪽인 都城의 남쪽에 國家大寺가 건립되는 일반적인 현상에서 일탈하여 宮城의 뒤쪽인 都城 북쪽에 건립되었다. 게다가 同泰寺 平面은 寺域의 사방을 물길로 에두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淨土는 俗塵과 區別되는 世界로서, 四方이 蓮池로 둘러싸여 있다`는 당시 사람들의 淨土觀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同泰寺는 民居가 자리한 俗塵의 세계인 都城 남쪽이 아니라 `此岸`과 구분되는 宮城 너머 都城의 북쪽에 건립되었다. 게다가 武力이 아닌 佛法에 의해 세상을 통치하겠다는 `皇帝菩薩` 武帝의 이념에 따라 刑獄을 管掌하던 大理署 자리가 寺址로 선택되었다. 둘째, 同泰寺의 正殿에는 6·7세기에 거의 조성된 사례가 없는 十方佛像과 十方菩薩像이 奉安되었다. 6세기 梁에서는 大乘과 小乘의 커다란 차이가 十方佛을 認定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同泰寺 正殿의 十方佛은 同泰寺가 大乘思想에 입각해 세워지고, 大乘이 實踐되는 空間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이 곳에서는 大乘思想의 커다란 實踐行 가운데 하나인 捨身, 講經, 無遮大會 등이 武帝 주도 아래 대규모로 열렸다. 武帝는 이 十方佛像 앞에서 大乘 菩薩戒를 받은 `皇帝菩薩`로서 懺悔를 하며 `衆生 救濟`에 대한 誓願文을 읽었다. 武帝의 `衆生 救濟`는 단순히 個人의 宗敎的 發願이 아니며 `皇帝의 大乘 菩薩道 實踐`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므로 同泰寺에서 행한 捨身, 講經, 無遮大會 등의 大型 奉佛行爲는` 大乘思想의 實踐行인 十善에 의해 統治하는 佛敎的 聖王`, 즉 轉輪聖王의 統治思想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면 現實의 淨土로 설계된 同泰寺는 武帝가 轉輪聖王임을 드러내는 政治的 空間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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