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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일환 (순천향대)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58輯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37 - 83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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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온천은 조선시대 역대 국왕과 왕실이 湯治를 위해 가장 선호하던 온천장이었다. 조선조를 일관하여 전기의 태조, 세종, 세조, 후기의 현종, 숙종, 영조와 사도세자가 행행하여 조선왕실의 온천 목욕법에 대한 제양상과 독특한 특징을 보여주었다. 세종은 습창과 안질 등으로 온양온천을 세 번 찾았다. 그는 처음으로 목욕법을 연구하여 민간 목욕법을 수용하였다. 습창에는 효험을 보았지만 안질은 효험이 없어 실망하였다. 세조는 피부병으로 고생하다가 재위 중에 세 번을 찾았다. 그는 습창에 큰 효험을 보았고 절후에 맞춘 목욕법과 보양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국왕의 온천욕법은 조선후기에 현종과 숙종대에 체계화된다. 임란이후 국왕의 온행을 재개한 현종은 眼疾이 심해 온천을 찾았는데 첫 온행에서 효과를 크게 보아 慈殿 및 중궁전과 함께 전후 다섯 차례나 온행하였다. 당시 목욕법은 의자에 앉은 채로 머리를 감는 沐과 몸을 탕에 담그는 體浴으로 나뉘었다. 목은 다시 流頭와 沐頭로 나뉘어 현종의 2차 온행부터 沐頭가 주된 목욕법이 되었다. 沐은 바가지로 물을 퍼서 수백 회에서 수천 회에 걸쳐 머리에 부어 감는 방법이다. 浴의 경우는 온천탕에 몸을 담근 후 소리 내어 唱數하는 방법으로 보통 수백에서 수천수를 세었다. 숙종은 57세의 고령에 온천에 거둥하여 안질과 다리 저림, 가슴 막힘 등을 치유하였는데, 당시 御醫였던 이중번의 독특한 온천욕법을 채택하였다. 한편 원기를 지키기 위해 목욕을 여러 번에 나누어 실시하였고, 중간에 보양식으로 미역국과 생맥산, 이즙고 등의 음료를 먹었다. 탕욕을 할 때는 처음으로 禁漏를 사용해 시간을 측정했다.
영조와 사도세자는 각각 소양증과 다리의 습창 치료를 위해 온양에 왔다. 비교적 경미한 질환이어서 영조는 浸洗法으로 다리를 물에 담고 상처는 물로 씻는 방법으로 치료했다. 사도세자는 다리의 濕瘡을 치료하였는데 반신욕과 薰洗를 통해 상처를 치료하였다. 이러한 역대 국왕의 독특한 온천 목욕법은 일상사적 시각에서 조선시대 왕실문화의 새로운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조선시대 국왕의 질병
Ⅲ. 역대 국왕의 온천 목욕법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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