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동락 (대가야박물관)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5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65 - 98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梵日(810~889)선사는 溟州출신으로, 그의 집안은 金周元계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졌다. 崛山門의 성장은 범일의 가문과 김주원계의 후원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그러다가 신라왕실에서 國師로 초빙한 871년(경문왕 11)무렵부터 왕실의 지원이 본격화되었다. 범일과 굴산문은 김주원계의 후원으로 성장했고, 신라왕실의 지원을 받으면서 급속히 발전할 수 있었다.
범일의 비문은 효공왕 때에 朴仁範이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 굴산사 터에서 발견된 비석 조각의 ‘溟州都督’과 ‘副都督’ 등은 비석 건립에 관여한 인물이었다.
굴산사에 머물던 범일은 洛山寺와 三和寺등을 포섭하였다. 낙산사와 삼화사는 모두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었다. 낙산사에서는 김주원계의 도움이 있었고, 삼화사에서는 신라왕실의 후원을 받았다. 범일은 굴산사의 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거점 사찰을 확보하였고, 그것을 토대로 성장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梵日의 崛山寺주석과 崛山門개창
Ⅲ. 洛山寺·三和寺포섭과 굴산문의 기반 조성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4)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22174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