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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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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5집
발행연도
2016.4
수록면
238 - 267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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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1392~1910)은 科擧의 나라였다. 같은 시기의 중국보다 4배나 많은 과거를 실시하였다. 조선(1393~1894, 502년)은 약 804회의 文科를 설행하였고, 중국(1371~1905, 535년)은 (조선의 文科에 해당하는) 進士科가 201회 설행되었다. 심지어 조선은 전쟁 중에도 중단 없이 과거를 실시하였다.
과거에 한 번 급제하기도 어려운데 두 번 급제한 재급제자들을 문과와 무과에서 조사하였다. 정치적인 이유나 시험 자체의 문제로 과거 시험 전체가 취소되는 罷榜이나 과거 부정 또는 개인적 이유로 削科나 拔去가 되어 과거 급제가 취소되었다. 그래도 停擧만 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과거에 도전하였다. 그 결과 문과에서는 조선 전시기에 53명의 재급제자를 확인하였다. 무과에서는 2회 시험에서 52명의 재급제자가 출현하였다.
급제 취소의 원인은 다양하였지만, 立身揚名의 가장 빠른 길은 과거 급제였다. 왜 과거를 2번 급제했는가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거가 가지는 의미 내지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급제는 官界 진출의 척도였으며, 陞進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즉, 출세의 사다리였다.
과거는 다른 곳에 관심을 둘 여유를 주지 않으면서 많은 양반 사대부들을 국가 체제 안에 귀속시킬 수 있는 일종의 ‘사회 안전핀(social safety pin)’ 역할을 수행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조선시대 무과방목의 전산화
Ⅲ. 무과 재급제자 현황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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