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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승충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61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323 - 361 (39page)
DOI
10.15299/jk.2016.11.6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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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전하는 ‘加耶叛’ 기사에 대한 재검토를 목적으로 한다. 가야제국 가운데 멸망과정을 전하는 것은 김해 가락국(=금관국)과 고령 가라국(=대가야) 뿐인데, 멸망과정은 전혀 상이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가야반’ 기사의 성격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종래 ‘가야반’의 연구에서는 대체로 ‘가야’에 대한 신라본기 찬자의 인식 문제가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았고, 또한 ‘가야반’의 ‘반’의 의미 부여에만 집착하여 가라국의 정치 형세를 ‘반’에 맞추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에 악사 우륵과 강수의 선조 등의 ‘집단 사민’ 및 관산성 전투에서의 패배를 대가야의 실질적인 멸망으로 간주하여 이후 잔여 세력이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가야반’이 실제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는 것은 대가야의 멸망 기사가 없는 점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구절은 가야의 중심국인 금관국의 멸망을 가야 멸망의 최종 단계로 상정하여 염두에 둔 표현인데, 금관국을 결코 일개 소국으로 취급하지 않고 가야 그 자체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야반’의 ‘가야’는 대가야라는 협의의 소국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야 전체를 나타내는 광의의 표현이다.
「가락국기」의 금관국 멸망 기사에서는 마지막 왕 구형왕의 동기로 탈지이질금 즉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왕을 언급하고 있다. 금관국의 멸망 과정에 대가야의 마지막 왕을 형제관계로 서술한 것은 후대 양 국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인식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금관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재위 연수를 늘여 대가야의 멸망 시기에 맞추고,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왕을 동기 탈지이질금으로 둔갑시켜 보내 남겨 둔 것으로 서술했다.
다만 ‘가야반’의 해석에 있어서는 이 같은 금관국 중심의 인식적인 접근 이외에 대가야의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접근해 볼 수 있다. 대가야는 백제를 도와 관산성 전투에 참여하고 신라와 대적했는데, 신라는 대가야의 이같은 태도를 자국에 ‘반’한 세력으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가야의 중심국인 금관국이 투항한 상태였기 때문에 신라본기 찬자의 입장에서는 ‘가야반’에 의한 무력 병합은 당연한 서술이었던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가야반’에 대한 제설과 문제점
3. 『삼국사기』와 「가락국기」의 가야 인식
4. ‘탈지이질금’과 ‘가야반’의 의미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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