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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저널정보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인천학연구 인천학연구 제27권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81 - 121 (41page)
DOI
10.46331/jis.2017.08.2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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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서는 조선시대 지방행정 관서가 수행했던 기능에 외국과의 통상업무, 비자발급, 조계지관할, 외국인과 조선인 사이에 일어나는 각종 쟁송 등을 관할하던 개항장에 설치된 지방관아였다. 조선시대의 중요한 행정관서임에도 존속기간이 짧고, 감리서의 기능을 이어받은 일제가 흔적을 지워나갔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부족해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근대기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위해서는 감리서 연구가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자료 확보가 비교적 쉬운 인천감리서를 고찰했다.
인천감리서는 개설이후 1년간 화도진사를 사용하다가 1884년 8월에 이르러 조계지 인근으로 옮겼다. 인천감리서가 신축이전한 부지는 개설이후 134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 여러 개의 필지로 나누어져 있으나, 전체 대지는 비교적 온전한 형태가 가구(街區)로 남아있다. 인천감리서가 입지했던 장소는 지리적으로 인천개항장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곳이었으나, 일제가 인천을 항구와 항구인근에 세워진 일본조계지를 중심으로 도시를 운영하여, 법원 이전 전까지는 발전이 지체되었다.
인천감리서의 대지규모는 다른 지방관아에 비해 협소했으며, 향청과 객사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인천감리서 안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우체사인 인천우체사는 물론 법원과 검찰, 학교도 세워졌다. 결과적으로 인천감리서는 근대인천의 행정, 사법, 교육, 경찰, 행형, 통상의 시발지이다. 경성감옥 인천분감에서는 백범 김구선생이 수형생활을 했던 곳이며, 연구진행 과정에서 관련 도면을 입수하기도 했다. 아울러 근대기 외래문물의 영향으로 주로 외국인이 세운 건축물 중심의 연구가 이루어졌던 인천지역 근대건축사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본 연구를 통해 감리서 터의 입지적 특성과 변천과정, 감리서 안에 세워진 각종 시설물을 살펴보았다. 추후 인천감리서를 구성했던 관아건축의 원형과 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규명하는 조선후기 감리서 건축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필요하다.

목차

Ⅰ. 서론
Ⅱ. 제도적 고찰
Ⅲ. 인천감리서 터의 특성과 변천
Ⅳ. 관아와 여러 정부기관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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