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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광석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84輯
발행연도
2017.10
수록면
287 - 313 (27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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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에도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초기에 걸쳐 구미 각국에 파견된 사절단 및 시찰단의 관료, 유학생 등의 서양체험에 주목하여 그들의 입헌정치에 대한 인식과 입헌제 수용에 관한 논의를 살펴본 것이다.
‘개국’ 이후 일본에서는 서양의 입헌제도에 관한 지식이 활발히 수용되었고 다양한 서양체험이 이루어졌다. 이미 에도막부 시기부터 네덜란드어, 영어, 중국어 서적의 번역을 통해 서양 정치제도에 관한 지식이 유입되었고 1860년대 이후 다수의 사절단과 유학생이 구미지역으로 파견되어 직접 서양 각국의 정치실태를 체험하였다.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는 다양한 서양체험을 바탕으로 한 입헌제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정치개혁론에 활용되었다. 막번체제의 개혁론으로 제시된 ‘大君制’ 국가구상이나 ‘公議政治’론은 모두 서양의 의회제도를 참고하거나 반영한 것이다.
메이지 신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근대 정치체제, 국가체제 수립과정과 관련되어 입헌제가 논의되었다. 메이지정부는 ‘천황친정’과 ‘공의 여론’을 내세우며 성립되었으나 ‘왕정복고’로부터 폐번치현에 이르기까지 신정권의 최대의 정치과제는 중앙집권국가의 건설이었다. 폐번치현 이후 입헌제 논의가 활성화되어 이와쿠라사절단이 서양문명을 견문하는 사이에 잔류정부 관료와 민간 지식인들로부터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입헌제 도입론이 제기되었다. 이에 반해 이와쿠라사절단에 참가한 메이지정부 지도자들은 서양체험을 통해 입헌제에 대해 직접 견문하고 서양 입헌국가와 일본의 격차를 실감하면서 즉각적인 입헌제 도입에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다. 즉, ‘정한론’ 정변을 통해 정권의 주도권을 장악한 오쿠보 도시미치와 기도 다카요시 등 정부지도자들은 이와쿠라사절단의 경험을 통해 서양의 정치제도에 대한 인식을 심화하고 서양문명을 상대화하면서 자신들의 입헌제 구상을 구체화하였다. 그들이 제시한 체제구상은 ‘민주’ 보다 ‘부국’을 우선시한 점진적인 입헌제도입론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막부 말기의 서양체험과 입헌정치 견문
Ⅲ. 메이지유신 시기의 입헌제 수용론
Ⅳ. 이와쿠라사절단과 메이지정부 지도자의 입헌제 인식
Ⅴ.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抄錄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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