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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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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헌주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세아연구 아세아연구 제60권 제4호(통권 제170호)
발행연도
2017.12
수록면
7 - 3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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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강위가 남긴 연행록을 통해 그의 대중국 인식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북유일기」에는 그가 북학적 전통을 계승하여 개방적 대청인식을 하였음이 잘 드러난다. 그는 청의 발전상을 편견 없이 인정했을 뿐 아니라 대명의리론이나 북벌대의론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연상하게 하는 청석령, 심양 등 기억의 장소를 지나면서도 호란을 떠올리는 시문조차도 짓지 않았다. 이는 실현 가능성도 없는 북벌이나 소중화의식보다는 청국과의 현실적인 사대관계를 더 중시한 그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였는데, 북학자들의 대외인식보다 한층 더 진전된 것으로 서양에 대해서까지 확대될 여지가 있었다. 「북유담초」・「북유속담초」는 북경에서 만난 사람과의 필담을 정리한 것이다. 강위는 이때 얻은 정보를 통해 중국의 위상에 대해 재인식하게 되었다. 그가 목격하고 필담으로 확인한 중국의 모습은 종래의 대국적 면모와는 큰 괴리가 있었다. 중국의 힘은 서양 열강의 침략은 물론 일본의 대만침략에조차 강력히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보잘것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이 외침을 받을 경우 중국이 별 도움을 줄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가 연행 과정에서 확인한 조선의 상황은 고립무원으로 강력한 적들에 둘러싸여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위태로운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는 조선이 살아남는 길은 승산 없는 전쟁이 아니라 외교적 해결에 있다고 믿게 되었고, 2차 연행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공공연히 합종연횡을 말하였다. 그는 1876년 대일수교 교섭 과정에 참여하여 평화적인 조약 체결을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동지겸사은사행의 여정
Ⅲ. 강위의 대중국 인식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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