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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남희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19집 제2호(통권 제32호)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155 - 17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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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세종시대 『소학』의 보급과 유행이 어떠한 역사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소학』은 신유학(Neo Confucianism), 특히 『대학』과 더불어 짝을 이루고 있다. 고려 말에서 조선 건국에 걸치는 시기, 주자학의 보급과 더불어 보급되기 시작했다. 특히 세종은 『소학』을 널리 보급하고 장려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삼국 및 고려시대에 유행한 불교(와 도교적인) 문화를 넘어서 주자학적인 사회 질서와 윤리를 구축하고자 한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불교적인 세계관에서 주자학적인 세계관으로의 거대한 문명의 전환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남녀관계 내지 젠더론 입장에서 본다면, 『소학』에서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으로 요약되는 남녀 구분, 처(妻)·첩(妾)의 구분을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어려서는 아버지, 결혼한 후에는 남편, 그리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 부부 사이에서도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악덕(惡德)으로서의 칠거지악(七去之惡) 같은 명제가 등장한다. 세종시대부터 그 같은 남녀차별 인식이 아이들에게 공공연하게 교육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이는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 남성의 가부장적인 지배가 제도적인 뒷받침과 더불어 한층 더 심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세종대의 『소학』 보급과 장려
Ⅲ. 『소학』 장려와 역사적 함의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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