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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병한 (서울대)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4집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165 - 20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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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06년 5월 개설 이후 1939년 2월까지 압록강 연안에서 일본의 대표적 지배기구였던 안동영사관의 개설 과정과 그 운영을 살펴보려 하였다. 안동영사관은 개설 당시 압록강 연안을 관할구역으로 설정하고 부속기구로 안동경찰서를 운영하였다. 안동영사관은 개설 이후 두 차례의 이전을 거쳐 1924년 11월 이후부터는 안동 진강산공원 산중턱에 위치하였다.
안동영사관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군의 만주군정에서 출발하였다. 일본군은 1904년 5월부터 1906년 10월까지 약 2년에 걸쳐 안동현군정서를 설치하고 안동에 군정을 실시하였다. 이 기간에 안동현군정서는 무력을 배경으로 안동현 일대의 토지를 대량으로 매입하여 이를 일본인 거주지역인 신시가 조성에 충당하거나 일본인들에게 불하하였다. 그리고 1920년대가 되면 일본인 거류 지인 안동 신시가에는 안동역을 중심으로 안동영사관과 안동경찰서를 비롯한 압록강 연안에서 일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구들이 밀집되었다.
안동영사관은 압록강 연안의 지역들을 관할구역으로 대표적인 일본의 외교기구였다. 안동영사관 관할구역은 안동현군정서의 관할구역을 이어받은 것으로 안동현을 비롯한 압록강 연안 대부분의 지역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여기에는 19세기 중반부터 압록강 연안으로 이주한 한인들이 거주하였다. 이러한 안동영사관 관할구역의 특성상 안동영사관은 영사관 본연의 임무 이외에도 독립운동을 포함한 한인들에 대한 탄압과 감시를 주요 업무로 하였다.
압록강 연안 한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와 감시는 안동경찰서가 담당하였다. 안동영사관 부속으로 설치된 안동경찰서는 1924년 이전까지 안동영사관과 인접하였다. 안동경찰서는 안동 시가를 포함한 안동현에서 파출소와 주재소를 증설하고 경찰권을 행사하였다. 특히 1910년대 이후 한인촌이 형성되어 있던 압록강 하류지역에는 주재소가 집중적으로 설치되었다. 이 과정에서 독립운동을 후원하던 접리수 한인촌과 같은 반일적 성향의 한인촌은 점차 소멸되고, 1920년대가 되면 그 자리에는 친일단체인 안동조선인회 지부가 설립되었다.
1924년 이후 안동 진강산공원 산중턱에서 안동을 굽어보는 안동영사관 건물은 당시 일본의 세력과 위상을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그러나 안동영사관은 1937년 7월 중일전쟁 발발 이후 1938년 3월 봉천총영사관 분관으로 격하된데 이어 1939년 2월 이마저 폐지되었다.

목차

1. 머리말
2. 일본군의 軍政 실시와 안동 ‘新시가’ 건설
3. 안동현군정서 폐지와 안동영사관 개설
4. 안동영사관 관할구역의 설정과 변경
5. 영사관경찰서의 설치와 운영
6.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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