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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50號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5 - 29 (25page)
DOI
10.29334/MHSH.2018.1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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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명문을 판독하고 인명을 중심으로 검토하여 화랑의 이름은 결국 크게 보아서 奉拜△, 進慶, 陽才△, 松竹△, 烏郞, 祥蘭宗, 正郞, 義匹, 王長△, 孝弼, 侖郞, 平道, 金郞, 香夲, 庚宣, 義△, 万孫, 芒王 등을 화랑의 이름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30명 이상의 화랑이 나오는 천전리서석 석각의 명문을 분석하였다. 울주 천전리서석 을묘명(535년)과 선각화는 장송 의례와 관련된 성지로 보인다. 화랑의 遊娛와 같은 곳의 장송 의례는 서로 모순이 되어 화랑의 하는 일 가운데 장송 의례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점말동굴의 석각에 礼府(=禮部)란 명문이 있다.
다음으로 癸亥年을 603년으로 보아 왔으나 443년 냉수리비의 癸未年, 574년의 울주 천전리서석 癸巳銘, 603년의 울주 천전리서석 癸亥銘, 663년의 울진 성류굴 암각 명문의 癸亥年 등의 癸자가 美에서 가로로 획을 하나 뺀 이체로 적혀 있다. 673년 癸酉銘阿彌陀三尊佛碑像이나 673년 癸酉銘三尊千佛碑像의 癸酉年의 癸자는 異體字가 아니다. 점말동굴의 癸亥年(두 번)은 癸자가 이체로 적혀 있지 않고 癸자로 적고 있어서 603년이나 663년일 수는 없고, 723년이나 그 이후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임신서기석의 연대는 두 명의 화랑 맹서란 것 이외에 연대 설정의 근거가 없다. 국가 차원의 최후 금석문인 568년의 마운령비를 중심으로 인명 표기를 조사하였다. 신라 금석문에서 인명 표기의 획기는 661년의 太宗武烈王陵碑이다. 무열왕릉비와 꼭 같은 인명 표기 방식으로 기재되었을 文武王陵碑에서는 중국식 인명 표기로 출신지명(부명)이 없고, 관등이 인명 앞에 가고 인명에 姓이 나온다. 곧 관등명+직명+臣+성명의 순서로 기재된다. 임신서기석의 두 화랑은 인명 표기 변화에 불만을 품고 인명을 비석에 새기지 않았으므로 임신년은 672년이 타당하다. 또 고유한 방식의 인명 표기는 663년의 울진 석류굴 암각 명문, 673년의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과 계유명삼존천불비상을 거쳐서 675년의 울주천전리서석 상원2년명, 680년의 조로2년명전명, 754~755년 사이에 만들어진 신라 화엄사경, 798년의 영천청제비 정원14년명 등에서 꾸준히 잔존 요소로 남아 있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화랑 석각 명문의 제시와 인명 분석
Ⅲ. 석각의 제작 시기
Ⅳ. 임신서기석의 제작 연대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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