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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란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33호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219 - 255 (37page)
DOI
10.31218/TRKH.2019.03.13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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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진상은 봉상하는 물품에 따라 物膳進上·方物進上·祭享進上 등으로 나뉘는데, 고려에도 조선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고려의 자료에서 자주 나오는 진상은 물선과 방물의 진상이다. 물선진상이란 임금의 식생활 재료를 바치는 진상을 의미하는데, 고려에서는 정기적인 물선의 진상인 常膳은 물론 비정기적인 진상인 別膳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방물진상이란 각 지역의 특산물을 임금에게 바치는 것으로, 거기에는 名日進上과 講武進上등이 있다. 특히 고려에서 명일진상은 臣子로서 반드시 수행해야하는 의무였다.
한편, 고려왕조는 임금에게 예물을 바치는 의례의 일환이었던 진상의 본래적 함의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사실 중국에서 진상은 황제의 영역적 지배를 확인시키는 상징적 의례로서의 의미를 지녔는데, 고려의 진상에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되었다. 즉, 고려의 각종 賀禮儀에는 諸州縣에서 진상물을 바치는 절차만을 규율해 두었을 뿐 京官의 그것을 삽입해두지 않았는데, 이는 진상물의 상납의례가 임금의 권한이 미치는 영역을 만민들에게 보여주는 상징의례였음을 가시적으로 구현한 조치였다. 또한 고려에서는 진상품으로서 상납되는 물품이 소량이었는데, 이것 역시 의례성이 강하였을 뿐 실용적인 목적이 없었던 진상의 본래적 의미를 살린 조치였다.
그런데 의례적인 예물이었던 진상이 唐代에 이르러 사적인 선물로 변질되어 갔던 중국의 역사는 고려에서도 되풀이 되었다. 임금의 총애를 얻기 위해 개인적으로 진상하는 私膳이 고려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것이다. 사선은 관인층의 욕망에서만 비롯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려의 임금들이 사선을 부추긴 측면이 컸는데, 그렇게 된 배경에는 왕실재정의 악화가 자리하였다.
사선의 성행에 따른 진상제의 확대는 선물경제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전근대 사회에서 관료들 사이에 다양한 물품을 주고받던 시스템인 선물체제는 사실 封餘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며, 고려에서 조선조까지 크게 성행했다. 봉여를 수수하던 선물경제의 관행은 당대 지배층들이 지녔던 治者意識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다시 말해 자신들도 임금과 마찬가지로 민으로부터 공물의 상납을 받아야 하는 치자라는 인식으로 인해 아무 거리낌 없이 봉여를 자기들끼리 관행적으로 주고받았던 것이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진상의 종류와 내용
Ⅱ. 예헌적 선물로서 진상의 특성
Ⅲ. 고려후기 私膳의 확대와 封餘·羨餘
Ⅳ. 진상제와 선물경제의 상관성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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