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상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관학정비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한국사상의 원류는 산악신앙을 기반으로 한 樂山文化이다. 그 핵심은 仙人王儉의 弘益人間과 在世理化의 이념이다. 그 특징은 보편성을 강조하고, 자율과 예제를 중시한다. 상대적으로 仁, 靜, 壽를 중시하는 문화로 중국 황하 유역의 황토고원지대를 이루어진 樂水문화 즉 智, 動, 樂을 강조하는 문화와 차이가 있다. 문자를 활용하면서 문화가 급격하게 발전하였으며, 관학 정비는 실용적 단계에서 학문적 체계가 갖추어졌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관학정비의 또 다른 의의는 고대의 군자국, 예의지국을 한 단계 발전된 예제사회 건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太學 설립 이전에 이미 높은 경학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그 후 민간 서민들도 扃堂에서 경서를 배울 수 있었다. 백제에서는 중국 남조와 활발한 학자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국제 수준의 학술이 발전하였고, 경학의 전문화가 이루어졌으며, 국제 교류가 활발한 해양문화의 특성을 지녔다. 신라는 전통을 잘 고수하여 한국적 특성을 잘 드러냈다. 화랑의 충도와 세속오계, 그리고 역대 제왕들의 安民사상은 이를 대변한다. 설총의 六經訓解는 한국 경학의 효시로 의미가 크다.
학문의 발전과 관학의 정비는 예제를 중시하는 한 단계 발전된 문화사회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구려에서는 길흉에 대한 합리적 판단과 순장을 금지하는 예제사회로 발전하였다. 백제에서는 발전된 경학을 바탕으로 세련된 예제사회로 진입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강한 주체의식을 발휘하여 天子의 儀禮를 시행하였다. 신라에서는 화랑에게도 道義의 禮와 歌樂을 강조하였다. 비교적 늦었지만 王號를 사용한 이후부터 상복법 등 예제를 정비하였다.神文王은 그의 시호처럼 국학을 정비하고 신라를 학문과 의례가 정비된 예제사회로 발전시킨 현명한 군주이다. 대외적으로 국제적인 외교 의례를 원만하게 시행하고, 대내적으로는 학문과 예의가 강조되는 선진 문화사회를 구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