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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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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37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99 - 12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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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일본 사행을 통해 일본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견문록 류가 출현하였다. 18세기 견문록은 일본지리지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원중거의 일본 사행 경험은 燕巖學派 인물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덕무의 <청령국지>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견문록 류의 특징은 개인의 폭넓은 독서와 지식에 대한 개방적 추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공적인 목적을 위한 관료의 기록이었다는 점이다. 유길준은 연암학파의 학문적 세례를 직접적으로 받은 인물이자, 전통적 사행 담당층과 마찬가지로 정부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서유견문』의 성립 과정은 전통적 사행 견문록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폭넓은 문헌과 실제 견문을 바탕으로 지식의 찬술이라는 전통적 글쓰기 방식에 의해 작성된 <서유견문>은 공적인 목적의 실현을 위한 기록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유길준은 문물을 연구하여 조선에 도입시켜야 했다. 『서유견문』은 상당 부분 『西洋事情』을 모방하고 있으나 그 배경에는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국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계몽시키려는 의지가 있었다. 과학적 지식을 담기에 한문은 적절치 않았으며 국인들을 쉽게 이해시키기에 어려운 문어였다. 좀 더 정확한 번역 추구하기 위해 문체를 선별했던 후쿠자와와 달리 개화에 이끄는 계몽 도구로 국한문혼용체를 선택했던 예에서 보듯 유길준은 경세가의 태도로 지식을 다루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료와 지식인의 경계에 있던 그의 저작물 <서유견문>은 전통적 견문록류와 <西洋事情>과 같은 지식전달서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복합적이고 경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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