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철학연구회 동양철학연구 동양철학연구 제57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247 - 275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尙書』는 儒學의 초기 經典이며, 『詩』와 더불어 孔子가 정리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그리고 宋代 性理學은 『尙書』를 이용한 道統論이 강조되었다. 즉 堯, 舜, 禹, 湯, 文·武로 시작되어 孔子를 거쳐 二程 및 後儒까지 이어지는 道統에 관한 논의는, 正統이란 개념을 통해 儒學의 권위를 확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논의이다. 이후 儒學에서는 『尙書』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나 『尙書』가 五經으로써 儒學의 經典으로 확정된 것은 前漢時代의 일이다. 그리고 『尙書』는 前漢初期 이전에는 儒學에서 중요시되던 문헌이 아니었다. 『尙書』는 『論語』에 인용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현재의 체례는 아니지만 孔子 생존 당시에도 존재했던 문헌이다. 그러나 『論語』에 인용된 『尙書』는 그 빈도가 『詩』에 비해 극히 적다. 뿐만 아니라 『孟子』, 『荀子』에도 『尙書』가 인용되는 빈도는 매우 적다. 인용하는 경우에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역사적 전거로써 활용될 뿐이다. 따라서 『尙書』는 荀子時代까지도 儒學의 중요 문헌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前漢初期가 되면 儒學은 官學으로 발전하게 된다. 五經博士제도가 생겼으며, 기존까지 諸子百家의 공동 학습서였던 여러 문헌들이 儒學의 經典으로 확정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尙書』가 五經의 하나로 정착되었고, 尙書學이 발생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尙書』가 孔子 생존 당시에도 존재했던 문헌임에는 틀림없으나, 儒學에서 『尙書』를 주목하게 된 것은 前漢初期라고 할 수 있다. 孔子가 『尙書』를 정리해서 편찬했다는 것은 五經이 結集된 이후, 經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漢代 經學者들의 說이다. 이와 같은 漢代 經學者들의 주장이 등장한 것은 前漢初期부터 강조되었던 『尙書』의 중요성 때문이다. 『尙書』에는 堯舜時代 및 夏·殷·周 三代의 역사적 기록을 담고 있으며, 각 시대별 帝王들의 정치적 업적 및 교훈을 담고 있다. 儒學의 官學化 측면에서, 儒學이 다른 諸子學과 달리 國家의 官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王朝가 필요로 했던 역사적 정당성과 권위성을 뒷받침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尙書』가 儒學의 官學化와 더불어 주목받게 된 것이다. 기존 『尙書』에 대한 연구는 漢代와 관련해서는 今古文논쟁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漢代 정치와 관련된 연구 또한 春秋三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尙書』는 『春秋』와 마찬가지로 漢代 정치에 영향을 주었다. 『尙書』의 博士들은 帝王의 스승이란 의미에서 帝師로 칭해졌고, 주요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尙書』는 帝王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漢代에 유행했던 讖緯說 또한 『尙書』「洪範」편에 근거한 것이 많다. 이것은 『尙書』가 가지고 있는 政治적 意義이며, 기존 연구에서 소홀히했던 부분이다. 따라서 論者는 尙書學이 성립된 전후의 인식변화를 논의하고, 『尙書』의 어떤 부분이 漢代 정치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논의하여, 尙書學의 성립에 따른 政治적 意義를 논증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15)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