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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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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33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85 - 21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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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代 이후로 급부상하는 墨竹의 繪畵史에서 趙孟頫(1254-1322)의 묵죽이 끼친 영향이 크다. 조맹부는 宋代 皇室의 후예였지만 元의 몽고황제 여러 대에 종사하였고 정1품의 고위관직에 오르면서 문화예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조맹부의 그림은 원 황제의 애호를 받았고 원대 관료들에게 지극한 찬사를 받았다. 원대 조맹부 묵죽의 전개양상을 조형의 측면에서 보면, 조맹부가 제시한 서예적 표현이 영향력 있는 동시대 관료화가 高克恭에 의하여 공유되었고, 원대의 주요 묵죽화가인 趙雍(조맹부의 아들) 및 후대의 관료화가 柯九思로 이어졌다. 나아가 관료문인들을 넘어서 이들과 교유한 문인화가들에게도 수용되면서 조맹부로부터의 묵죽은 동아시아회화사에서 묵죽 양식의 기틀이 되었다. 의미의 측면에서 보면, 조맹부 자신이 대나무가 가지는 君子의 德을 칭송하였고, 원대 관료문인들은 조맹부의 묵죽에 王孫의 격조가 있고 君子의 도덕과 忠節의 정신 및 심지어 伯夷叔齊의 정결함이 깃들었다고 하였다. 원대 관료문인들의 시문에 조맹부 묵죽을 칭송한 시문이 많다. 원대의 다민족 관료계에서 묵죽의 인격 칭송은 곧 그들 자신의 충성 표현의 매체가 되었던 것을 간취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묵죽이 군자의 절개로 이해되고 특히 원대의 묵죽이 몽고정부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해석되는 일반적 경향을 염두에 두고, 조맹부 묵죽의 터전이었던 원대관료사회 내면을 조사하였다. 이로써 조맹부의 묵죽문화에 저항정신이 전혀 없었고 그 회화사적 영향력 배후에는 오히려 정치성이 역할 하였음을 밝혔고, 나아가 회화사에서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순수조형요소의 양식형성 이면에 정치적 권력에 관련되어 있는 예로 제시하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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