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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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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90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69 - 289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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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청조의 예비입헌(預備立憲) 실패가 신해혁명(辛亥革命)을야기한 것과 국민정부 훈정 실패가 국공내전을 유발한 두 차례의 역사적 경험을 참조하면서 손중산(孫中山)의 건국정서론(建國程序論)이 왜삼민주의 공화국 건국 이상을 이루는 유효한 지도 방침이 되지 못하였는지를 고찰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청조의 예비입헌의 실패가 청조가 민간의 개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여 통치집단 차원의 분열을 가져오던 중 개명파들이 혁명당과 합작을 하여 정권의 수평이동을 순식간에 가져왔으며, 이발전이 청조와 혁명당의 계획을 벗어남에 따라 청조 예비입헌이나 손중산의 동맹회군정부 혁명방략이 모두 실시해 볼 기회를 얻지 못하게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손중산의 2차혁명 실패 후 계획한 건국정서(建國程序)는 국민정부일당 체제가 원래의 군정부를 대신하여 점진적인 헌정을 추진하려는것이었다. 국민정부는 군사적으로 통일을 완성한 후 당국훈정(黨國訓 政) 단계에서 지방자치의 효과가 없자 헌정을 시도하였으나 일본의 침략을 받아 중단되었다. 국민정부는 항전 후기에 재야 세력의 전후 헌정에 대한 기대에 적극 호응하였으나 항전이 종식되자 각 당파를 정치 협상회의에 초치하여 화평 건국과 제헌 등의 의제를 제기하였다. 최종적으로 중국공산당과 중국민주동맹이 제헌에서 퇴출되고 <화평건국강령>과 <정협헌초>가 헌정을 대표하는 공식문건이 되면서 손중산의점진적 관점이 포기되고 헌정 실시가 훈정의 가장 유효한 방법으로 간주되게 되었다. 중화민국은 타이완으로 이동한 뒤 건국정서론에 따른 일당 독재를수립하였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훈정 실천 즉 지방자치는 마침내 이러한 기초 위에서 변혁을 거치면서 헌정을 완성하는 민주화의 길을 걷고있다. 그러나 아무튼 근대 중국의 민주화의 경험은 손중산의 건국정서론이 단지 단일 정치 역량이 전국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동안실현 가능하며, 그렇지 않으면 국가 정권이 필경 헌정의 이름으로 정당 개방을 하여 통치상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지방자치와 민주화의동력으로 효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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