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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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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9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59 - 28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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聽松 成守琛(1493~1564)은 16세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의 한 사람이다. 그는 ‘東國 18賢’의 하나인 牛溪 成渾의 부친이며 靜庵 趙光祖의 문인이다.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비롯한 己卯名賢이 희생되자, 그는 出仕를 포기하고 재야에서 山林處士로 생애를 보냈다. 퇴계, 율곡이 성리의 이론에 밝고 경세에 적극적이었다면, 聽松과 南冥 曹植은 실천을 중시하고 은둔하여 처사로서 살았다. 이처럼 16세기 초엽 조선 성리학의 방향을 ‘隱居自守 聖賢自期’의 道學 君子風으로 전환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 이가 바로 성수침이다. 그가 이렇게 隱遯과 自守의 길을 선택한 것은 한편 昌寧 成氏 家學의 영향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靜庵 道學의 爲己之學과 실천유학을 계승한 측면도 있다. 성수침은 이론보다 실천, 경세보다 내면적 자기 수양을 중시한 까닭에 그의 문집에 학술적인 자료가 거의 없다. 몇 편의 시를 제외하면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그에 관한 연구도 문학적인 연구가 약간 있을 뿐이고 철학적인 연구는 거의 없다. 본고는 이러한 배경에서 성수침의 내면세계를 중심으로 그의 도학정신과 務實학풍을 조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성수침이 비록 은둔의 처세를 선택해 산림처사로 일생을 살았지만, 나라와 백성에 대한 憂患의식은 변함없었다. 성리학의 탐구에 沈潛하였고, 利欲에 초연한 선비의 길을 걸었다. 이는 그가 죽었을 때 ‘山林이 텅 비었구나’라고 했다든가, 그를 가리켜 ‘一國의 善士요 當代의 逸民’이라고 평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의 학풍은 靜庵을 계승하여 小學風과 爲己之學을 견지하였고, 특히 言語之學을 지양하고 務實學을 추구하였다. 誠을 근본으로 한 그의 務實학풍은 이후 아들인 牛溪 成渾을 통해 전수되었고, 牛溪學派를 통해 면면히 계승되었다. 비록 성수침 자신은 아들인 우계나 율곡에 비해 유학사적인 위상이 낮다 하더라도 成渾에게 미친 영향은 甚大하였다. 또 위로는 鄭夢周-吉再-金叔滋-金宗直-金宏弼. 鄭汝昌-趙光祖로 이어지는 여말 의리학파 내지 도학의 道統에 닿아있고, 아래로는 아들인 成渾을 중심으로-尹煌-尹宣擧-尹拯으로 이어진 牛溪學派를 낳았다는 점에서 그의 위상을 가볍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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