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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75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65 - 19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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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은 한국인과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동시에 중국 공민으로서 정치적 권리를 보장받는 과경민족이다. 조선족은 모국인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중국 현지 문화에 동화되면서 문화접변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술 형식이 바로 연변창담이다. 연변창담은 한민족 전통예술인 판소리의 형식과 민요의 선율을 바탕으로 1973년 조선족 최수봉에 의해 새롭게 재창조된 설창양식이다. 조선 말기 생존을 위해 중국 동북지역으로 이주한 농민들이 조선족의 전신이 되었고, 이중 남도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 내 집거 공간에서 전승되던 판소리는 이동백을 대표로 하는 판소리명창들의 순회공연 등으로 20세기 초반 중국 내에서 본격적으로 소비되었다. 형식적 측면에서 연변창담은,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중국 현지에서 전승되던 판소리를 필두로 한 한국 전통공연예술 양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연변창담의 바탕이 되는 곡은 한민족의 민요 『수자풀이』이며, 연변창담의 첫 작품인 『백계연에서의 회사』를 시작으로 『기습』, 『인민의 아들』등에서 이 『수자풀이』 선율을 전주곡으로 활용한 것이다. 내용적 측면에서 연변창담은 중국 혁명의 역사와 건국 후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 노동생산과 일터를 찬양하는 지극히 혁명적이고 사회주의적 소재를 활용한다. 그 결과 연변창담은 문화대혁명 시기 혁명가요와 함께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가장 성행했던 음악장르였고 문화대혁명이 종료한 후에도 한동안 계속 창작, 공연되었다. 연변창담은 중국에 전파된 한민족 문화예술이 중국 내 현지화의 과정을 거쳐 고유의 특징을 획득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연변창담은 한민족 전통예술을 해외에서 계승하는 동시에, 현지화 된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창작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연변창담은 한민족 전통예술 해외 전파의 과도기적 양식일 뿐, 성공사례로 예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형식적으로 판소리와 민요의 선율을 차용했을 뿐, 독자적 예술 양식으로서의 변별성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며, 소재의 다양화에 실패하여 일반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들을 선보이지 못함으로서 대중들과 유리되어 보존의 영역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연변창담은 형식과 내용, 사회 구조의 한계로 인해 고유의 정체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사회의 쇠퇴와 더불어 가속화되었다. 한민족의 해외 이주 과정에서 보여주는 한민족 전통문화와 전통예술의 정착 및 연변창담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장르의 개발과 쇠퇴의 모습은 한국 전통예술의 해외 진출과 세계화의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실제 고민해야 할 지점이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귀중한 예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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