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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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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1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27 - 168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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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동 은진송씨 묘역은 15세기 말 송요연·송순년 형제에 의하여 기획되었고, 송요연이 상사한리 묘역에 入葬(1499년)한 이후 그 후손들이 이곳에 繼葬함으로써 조성되었다. 그리고 하사한리 묘역은 그 보다 60년 후에 장손인 송세훈이 그 아들 송남수의 노력으로 下沙에 入葬(1522년)한 후 그 후손들이 이곳에 繼葬하여 이루어진 또 하나의 묘역이었다. 은진송씨가 이사동에 이들 묘역을 조성할 수 있게 된 것은 당시의 관행에 따른 사대부의 守護禁養에 의한 養山處로써 형성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들 송씨 문중은 묘역의 수호와 선조제사를 위하여 墓田을 조성하고, 墓直을 두었으며, 墳菴(齋室)을 설치하고 時祭를 이행하면서 300여 년간의 參祭錄을 남기었다. 송여림(1461-1529)은 ‘사대부집에서 산소를 수호할 수 있는 것은 祭祀가 이어지는 때문이고, 제사가 이어지려면 墓田이 있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제전을 마련하고 자손에게 遺訓하여 계속해서 묘전을 넓혀가도록 했다. 그는 이러한 운영을 위하여 宗契로써 奉先契를 조직하였고, 송남수 등 후손들은 이러한 선조의 유훈을 잘 계승하였다. 묘역의 발전으로 묘 아래에는 후손이 많이 와서 살게 되었다. 현재 55만평에 달하는 이 묘역에는 묘소가 1,000여기에 이르게 되었고, 21개 파의 묘소관리를 위하여 14개의 재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편 이사동 묘역의 제례문화에서 주목되는 경향은 다음과 같다. 즉, 통일적 예제를 추구하여 4대봉사로 통일시킨 점, 歲一祀는 輪行으로 하게 한 점, 묘역조성에는 종원에게 차별없이 개방하고 상사와 하사에 각각 도산지기(都山直)를 두어 묘역을 관리한 점, 묘역에서의 伐木을 규제하고 벌목관리 일제를 일체를 宗中이 독점적으로 관리하도록 한 점, 제례는 『朱子家禮』를 위주로 하되 갈등이 발생하면 兩宋(송시열, 송준길)의 禮說로 조정한 점, 한 마을에 14개나 되는 재실을 조성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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