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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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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89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209 - 23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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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순원왕후의 생애와 세 명의 공주 그리고 순원왕후와 안동 김씨 가문과의 관계에 대하여 여성사적 입장에서 재조명한 것이다. 순조의 비 순원왕후(1789-1857)는 본관이 안동으로 1789년(정조 13) 아버지 영안부원군 김조순과 어머니 청송 심씨의 장녀로 태어나 1800년(정조 24) 왕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삼간택을 하기 전에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왕비 책봉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1802년(순조 2) 왕비에 책봉되었다. 순원왕후는 조선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헌종 조와 철종 조)에 걸쳐 수렴청정을 하였다.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최고의 지위와 영화를 누렸으나 여성으로서의 삶은 매우 불행하였다. 슬하에 1남 3녀의 자녀를 두었으나 이들 모두 자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었다. 1830년(순조 30)에는 아들 효명세자(뒤에 익종으로 추존)를 잃었고, 1832년(순조 32)에는 둘째 딸 복온공주와 맏딸 명온공주가 불과 한달 사이에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년 후인 1834년에는 남편 순조가 승하하였으며, 1844년(헌종 10)에는 하나 남은 가족인 막내딸 덕온공주마저 세상을 떠났다. 1849년(헌종 15)에는 유일한 손자 헌종도 후사없이 승하하였다. 한편 순원왕후는 평소 책을 읽거나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여 많은 한글 편지를 남겼다. 순원왕후의 한글편지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과 친정 안동 김씨 외척과의 관계, 당시의 다양한 정치적 문제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집안에 혼인, 회갑, 과거급제 등의 경사가 있거나 유배, 죽음, 병고 등의 흉사가 있을 때 가족들에게 편지로 축하하거나 위로하였다. 또한 순원왕후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왕실 의례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사건 등에 대해 친형제 유근(逌根), 원근(元根), 좌근(左根)이나 재종형제 홍근(弘根), 응근(應根), 흥근(興根) 등과 의논하여 결정하는 일이 많았다. 이들 형제는 조정의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며 권력의 중심인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수렴청정을 하는 순원왕후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세력은 역시 자신의 친정 형제와 재종형제였던 것이다. 특히 순원왕후는 헌종 조 수렴청정할 때에는 친오라버니 유근, 재종오라버니 홍근(弘根) 등에게 의지하였고, 철종 조 수렴청정할 때에는 친동생 좌근, 재종동생 흥근(興根) 등에게 많이 의지하였다. 따라서 순원왕후는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친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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