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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32호
발행연도
2006.1
수록면
59 - 9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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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사 연구의 목표는 해당 지방과 다른 지방, 특히 각 왕조의 서울 지방과 비교하여 해당 지역사회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존감을 찾는 것이다. 지방사는 곧 국가사이기 때문에 국가와 지방이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왕조 국가의 지방 정책에서 도성 집중적 정책이 강할 때, 지방이 독자성을 강조할 뿐이다. 국가와 지방의 관계는 국가의 지방 ‘지배’와 지방의 ‘자율’ 운영 사이의 균형과 편중에서 찾아야 한다. 이번 글은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고려 초기 원주지방의 정치와 문화를 다룬 것이다. 고려 초기 국가는 전국을 110여 곳으로 나누는 광역 지방 통치 구조를 마련하였다. 군현 수는 500여개였지만, 110곳에만 외관을 파견한 것이다. 외관이 파견된 군현을 주현(主縣)이라 하는데, 각 주현은 4~8곳의 속현을 관할하였다. 이러한 한 명의 외관으로 여러 속현까지 관할하는 광역 지방지배방식으로 국가의 지배력을 행사하고자 한 것이 고려 지방지배의 특징인데, 이러한 고려국가의 지방 통치정책으로 말미암아 지방의 자율 운영 폭이 조선시대보다 넓을 수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현의 읍사에는 외관을 중심으로, 외관과 속관, 향리 조직이 하나있고, 외관 중심의 지배조직과 함께 관반층의 자율성이 강한 토관사(土官司) 조직이 별도로 있었다. 중앙의 지배와 지방의 자율을 동시에 허용한 통치 구조였다. 한편 고려 국가는 110여곳의 주현이 10여곳의 계수관 지역에 속하게 하였지만, 계수관과 주현의 관계는 지배의 상하관계는 아니었다. 단지 국가의 주요 관리 범죄인 사형죄를 처리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였을 뿐이다. 그 외의 경제 활동, 사회 활동, 문화 활동은 주현(主縣)의 자율성에 맡겨 두었다. 이러한 구조였기 때문에 원주의 지방 세력 역시, 개경의 관직으로 진출하거나 지방의 향리로 복무하거나 아니면, 지방의 관반층으로 사는 등 자유로운 선택이 보장되어 있었다. 실제 이 시기 원주의 대표적인 가문이었던 원주 원씨의 예를 보면, 개경에 진출한 사람들도 있고, 원주의 향리직에 종사하던 사람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관직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살다가 불교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자율성 속에서 문화 활동도 중앙 문화와 지방 문화를 모두 경험하는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원주 철불이 대표적인 예이다. 원주 철불의 조성 및 후원 세력은 중앙의 예술 경향을 따르려는 사람들도 있고, 지역적 성격이 강한 예술을 하려던 이들도 있었다. 그러므로 원주 철불 문화는 신라 중앙 문화가 토착 문화를 만나 지방화하고, 그것이 다시 고려로 이행하여 시대적, 지역적 특징이 강한 문화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지방사 연구에서 강조되어야 할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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