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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일본근대학연구 제43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341 - 36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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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한 淸은 변법을 실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는 위기의식 아래 적극적으로 維新의 길을 찾았고, 일본이 강성해진 원인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탐구 결과 일본이 강성해 진 것은 유학생을 파견하여 해외에서 문물을 배워오게 한 것이 크게 주효하였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일본 등의 제도적 개혁을 본받기 위해 유학생을 파견하는 정책이 확립되었다. 戴季陶와 李大釗는 각각 淸末과 民初의 일본유학 고조기인 1905년과 1914년에 유학을 시작하여 2년에서 4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였다. 戴季陶는 일본유학 시기 일본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어󰡔日本論󰡕을 통해 일본의 특징과 우수성에 대해 논하기도 하였지만 귀국 후 일본의 제국주의 행로를 지켜보며 점차 일본에 비판적으로 변하였다. 李大釗 또한 일본이라는 정치, 문화 환경 속에서 서양의 근대문화를 받아들이며 발전된 민주주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후 일본의 ‘대아시아주의’에 대해 그것이 ‘침략주의’,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다른 이름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대항하는 ‘신아시아주의’를 주창하여 민족해방과 민족공조를 이루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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