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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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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학연구회 불교학연구 불교학연구 제30권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369 - 416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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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오대산 상원사 중창 권선문』을 대상으로 하여, 그 속에 편철(編綴)되어 있는 권선문(勸善文) 및 어첩(御牒)의 작성 연대, 한문본 및 언해본의 제작과 관련된 문제, 첩장(帖裝) 조성의 경위 등 아직까지 해명이 되지 않은 몇몇 문제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 자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판단으로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의 상당 부분을 풀었다. 첫째, 어첩을 쓴 시기 문제의 해결이다. 권선문과 어첩의 편철 순서, ‘조선왕조실록’, 김수온(金守溫)이 쓴 ‘상원사 중창 사적기(1475년)’, 권선문과 어첩의 내용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핀 결과 세조 11년[성화(成化) 1년, 1465 A.D.]인 을유년(乙酉年) 2월 20일 무렵에 작성한 글임을 밝혔다. 둘째, 언해본과 한문본을 별도로 조성한 이유에 대한 해명이다. 언해본의 뒤에는 공덕주로 많은 여인들이 등장한다. 이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언해본 조성이 왕실이나 내·외명부의 여인들은 물론, 주로 여성들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권선문과 어첩을 언해한 시기 문제의 해결이다. 권선문과 어첩 모두 중창 불사에 필요한 재화(財貨)를 모으기 위해 쓴 글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한문본에 이어 바로 언해본이 만들어졌음을 밝혔다. 넷째, 언해를 행한 당사자가 누구인가를 밝혔다. 상원사 중창 불사와 관련된 승려 중 권선문 이후 진행된 언해사업을 고려하여 학조(學祖)로 보았다. 다섯째, 신미와 세조가 시차를 두고 쓴 두 건의 권선문이 같은 첩장에 묶인 이유이다. 보관하여 많은 이들에게 불은을 입게 하고, 길이 간직할 목적에서 행한 일이다. 중창 불사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학열(學悅)의 주재 하에 동참 승려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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