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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림과학원 개념과 소통 개념과 소통 제2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69 - 215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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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 집중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하는 ‘문예 재판’들과 이를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외설과 예술’ 관련 담론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다. 즉 이 논문은 1960년대에 들어선 군부정권이 문화·예술을 관리하는 데 있어 어떤 제도적 변화들을 모색하였는지 살피고, 그러한 통치방식의 전환이 낳은 효과와 문제점은 무엇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는‘예술과 외설’을 둘러싼 오랜 논쟁들이 반복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물음들이 당대한국사회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되고 어떤 종류의 세부 논쟁들을 낳았는지고찰하는 일을 동반할 것이다. 1960년대는 ‘판례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재판이 열렸다. 한국의역사상 문화·예술작품의 외설성을 다루는 ‘문예 재판’이 처음으로 열린 것도 이시기에 접어들어서이다. ‘문예 재판’은 예술과 법이 새롭게 조우하는 장면들을 연출하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논의대상이다. 문예 재판은 “문학 논쟁을 법정으로 가져”오게 하고, 이로써 법정을 “비평-법률적 토의”의장이 되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외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넓게 형성되고 유관 담론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데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1950~1960년대에는 외설 재판과 유관 담론의 창출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되어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는 서구나 일본과는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 현상을 경험했다. 이 논문은 이러한 보편적 현상이 한국사회에서는 어떻게 경험되고 또 전개되었는지를 관찰하고자 한다. 1960년 영국에서 열린 ‘채털리 부인 재판’을 지켜보며 리처드 호가트가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듯이, 한국에서의 문예 재판 역시 상징적 의미를 갖는사건으로 수용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문예 재판들은 1960년대 한국사회가직면하고 있던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변동의 한 모습을 가장 극적인 형태로 드러내 준 문화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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