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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55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65 - 10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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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청대 조선 선박의 대만 표로 사례를 중심으로 근대 이전 한국과 대만 간의 교류사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1885년 대만성이 설립되기 이전에 대만은 복건성 관할이었고, 또 조선에서는 민간인의 해외 무역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조선 사절단은 모두 육로를 통해 중국을 왕래하였다. 때문에 조선 사절단이 직접 접촉하고 보고 들은 것은 대부분 북방에 제한되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조선과 대만은 직접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다. 조선의 대만에 대한 지식은 주로 사절단이 북경에서 수집한 정보와 관련 서적 및 문서 기록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에 대만에 대한 인식은 잡다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도 많았다. 근대 이전 조선과 대만의 직접적인 접촉 교류 사례는 해난 사고로 대만에 표류한 표류선박 이외에는 찾아 볼 수 없다. 현존하는 표류 기록들을 통해 대만과 조선 두 나라 정부의 해외 난민 처리 방식에 대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표류 지역의 일부 상황도 이해 할 수 있어서 중국 사료의 부족 부분을 보충해 주는 등 연구자들에게 귀중한 기록 자료를 제공해 준다. 청대(1644 -, 명대 정씨 통치시기를 포함) 이후부터 19세기 말까지 조선 선박이 중국에 표류하거나 류큐 열도, 동남아 등지 기타 국가로 표류 하여 중국을 통해 귀국한 사례는 대략 200여 건인데, 그 중에서 대만으로 표류된 경우는 현재까지 확인 된 사례만 15건으로, 가장 이른 것은 1729년이고 가장 늦은 것은 1877년 표류 사례이다. 대만으로 표류한 조선 선박은 대부분이 민간 어선 또는 연해의 무역 운반선들이었다. 당시 청 왕조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조공 및 무역 체제에서 난민들은 구조된 후 우선 대만부(지금의 대남)로 보내졌고, 다시 정부 관원이 대만해협을 건너 복건성 성도인 복주로 이송되었다. 복주에서는 전문 인력이 북경으로 호송하여 會同館에서 묵다가 조선 사절과 함께 귀국하였다. 표류 난민들은 귀국 후 모두 바다로 나간 것이 사적인 일이었는지, 기타 다른 범죄 사실은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 조사와 심문을 받았다. 이 같은 정부측의 조사 기록과 난민들의 구술을 정리한 견문록 漂海錄은 조선이 외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이전 대만과 한국 간의 교류 역사 연구는 청나라 초기 해금 시기 대만 정씨 정권 조선 표류 무역선 처리에 관한 논문 이외에 다른 전문적인 논문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대만에 표류한 조선 난민들의 견문록과 이국적 문화에 대한 체험, 그리고 대만 지방 관리들의 난민에 대한 구조 방법 등에 대한 연구는 서로 연구해 볼만한 가치들이 많다. 본 논문에서는 청나라와 조선의 사료 중에서 조선 선박의 대만 표류 기록 정리를 통해 청대 조선과 대만의 교류사와 조선시대 정부와 일반 백성들의 대만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해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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