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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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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민족문화연구 민족문화연구 제8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5 - 10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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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초기 이정(李禎)의 전기소설집 『전등여화(剪燈餘話)』는 『전등신화』의 영향을 받아서 영락 18년(1420)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선덕(宣德) 8년(1433)에 복건성 건양현(建陽縣)에서 장광계(張光啓)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그리고 두 작품은 곧이어 합각본으로 널리 전파되었다. 그러나 현재 초간본은 사라지고 명대 중기 이후의 성화(成化, 1465- 1487) 연간 간본과 만력(萬曆, 1573-1619) 연간 간본 등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 세종(世宗) 연간의 집현전 학자들은 1445년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편찬할 때 주석에서 『전등여화』「청성무검록(靑城舞劍錄)」의 일부를 채택하여 활용하였다. 이로써 중국본 『전등여화』가 불과 10년 이내에 조선에 전래되어 읽혀지고 있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전등신화』와 더불어 조선 문단에 다양한 영향을 주었다. 성임(成任)이 엮은 『태평통재(太平通載)』에도 『전등여화』의 「무마기인(巫馬期仁)」(원제「長安夜行錄」)과 「설도(薛濤)」(원제 「田洙遇薛濤聯句記」) 등 2편이 수록되어 있다. 『전등여화』의 이름은 『전등신화』, 『효빈집』 등과 더불어 국왕 연산군(燕山君)의 입에서도 직접 거론되어 연행사절단으로 하여금 중국에서 사들여오라고 하였고 또 해독하기 어려운 백화인 한어(漢語)는 당시 읽기 용이한 한문 즉 문자(文字)로 주해를 달아서 간행하라는 말까지도 한 바 있다. 실제로 명종 연간에 『전등신화구해』가 만들어진 것과 같이 『전등여화』도 구해를 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어숙권의 『고사촬요』 기록에 따르면 16세기 전라도 순창(淳昌)에서 『전등여화』가 판되었다고 했는데 현재 한국에는 원본이 남아있지 않고 일본으로 전해져서 판본의 일부가 남아 전하게 되었다. 도쿄의 국립공문서관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있는 후반부가 유일하게 남아 전하는 조선간본이다. 「순창간본」은 임진왜란(1592-1597) 무렵에 일본으로 유출되었고 일본에서는 이를 근거로 원화(元和, 1615-1623) 연간에 고활자본으로 간행되어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현존하는 명대 판본의 현황과 조선 전래의 상황을 살펴보고, 특히 조선 순창에서 간행된 일본 내각문고 소장본 조선목판본의 판형과 체제 및 후인의 독서기록인 평어(評語) 등 여러 가지 특징을 집중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전등신화』와 함께 조선에 전래되고 간행되었으며 깊은 영향을 끼쳤던 『전등여화』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당시 문인들의 독서 흔적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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