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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45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9 - 5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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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대학 설립에 공을 들였다. 서간도의 독립운동 단체였던 신흥무관학교의 교장 이시영은 1947년 4월 신흥전문학원을 설립한 뒤 배영대학원을 인수하고 신흥학우단을 복설하여 이를 기반으로 대학 설립의 꿈을 키워나갔다. 정부 수립 후 부통령이 된 이시영은 1949년 재단 성재학원을 구성하여 신흥전문학원을 신흥대학으로 승격시켰다. 1950년 4월 신흥대학은 동양외국어전문학관을 흡수, 합병하여 학교 운영의 안정적인 모습을 갖춰나갔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신흥대학은 부산으로 피난하여 전시연합대학을 열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새로운 재단 이사들이 임명되면서 이시영 측 이사들과의 마찰이 불거졌다. 결국 이시영의 큰아들 이규창이 학장에서 쫓겨나면서 재단 분규는 최고점에 달했다. 전쟁이 끝난 후 조영식 등의 이사진에 의해 성재학원은 고황재단으로, 신흥대학은 경희대학으로 개칭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흥대학의 전신인 신흥전문학원의 역사를 부정하였다. 더욱이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이 깃든 신흥대학의 역사를 왜곡함으로써 그 의미가 축소되고 말았다. 현재 경희대는 신흥대학 이후부터만 인정하고 있다. 경희대의 역사는 1911년 서간도에 설립된 신흥무관학교의 창학 정신을 이은 민족학교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야 신흥무관학교의 독립정신이 해방 후 민주주의적인 국민 양성을 목표로 했던 경희대의 역사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경희대학교 내에 이시영 선생의 동상을 건립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의미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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