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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42권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55 - 28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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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제국주의는 아시아·태평양 각지로 전선을 확장하는 한편, 전쟁을 지탱하기 위한 전시동원체제를 구축해갔다. 일제 식민통치의 초점은 전시동원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동화와 동원’에 집중되었다. 그렇게 구축된 ‘총동원’ 체제는 한인을 전쟁터의 군인으로 끌고 가는 병력동원으로 이어졌다. 중일전쟁 이후 ‘총동원’이라는 통제와 감시 속에 항일운동은 다소 위축될 수밖에 없었지만, 단절되지 않았다. 일제의 병력동원은 비밀결사의 형태로 이어지던 항일의식에 오히려 새 기운을 불어넣었다. 암울한 전시상황에서 한인은 식민지에서 징병을 실시하는 일제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패망과 광복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는 전시체제기 곳곳에서 전개된 항일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감시와 처벌은 더욱 폭압화되었지만, 일제 침략전쟁을 비판하고, 필패의 이유를 설파하는 이들의 ‘저항’은 곳곳에서 이뤄졌다.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은 사회주의 운동의 연장에서, 혹은 학생운동의 흐름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일제 침략전쟁에 대한 사실적 정보들이 입수되고 유포되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이렇듯 전황과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이 지식인 계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 전반에 확산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던 일제는 이를 막기 위해 경찰력과 사회적 감시체계를 강화했지만, 한인들의 현실인식과 항일의식은 들불처럼 번져갔다. 경북 각지에서 일어난 징병반대투쟁과 학병탈출의거, 각급학교의 항일운동은 그러한 토대 위해서 전개되었다. 병력동원에 대한 직접적 저항은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경우였다. 경북에서 이러한 항일운동이 일어난 데에는 그간 독립운동의 저력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본군의 주요 병영이 대구에 위치한 데에도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대구 제80연대를 목표로 삼은 항일의거가 수차례 일어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소년비행병 모집에 혈안이었던 안동농림학교의 경우, 학생들은 ‘특공대’와 ‘신풍대’로 일제에 맞서 싸우고자 하였다. 결국 일제의 전방위적 동원은 항일운동의 배경이 되는 역설을 낳았고, 극단적인 ‘전쟁과 동원’의 시대에 일제의 ‘동화’정책은 또다른 유형의 저항에 맞닥트려야 했다. 이는 일본제국주의 붕괴의 또다른 요인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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