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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7권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61 - 29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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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성호학의 유래를 찾으려는데 있다. 자료의 분석을 통해 알게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성호의 집안은 원래 경기도 여주지역의 토착세력이다가, 고려중기의 무인집권시대 무장으로서 중앙정계에 진출했다. 여말선초의 변혁기에 문관집안으로 전환해사족이 되었으며 수원, 안산일대로 거주지를 옮겼다. 조선초기에 집안을 일으킨인물은 李繼孫으로 대체로 훈구계열 인물로 파악되는데 이후 서울 小貞洞에 세거하며 文翰하는 집안으로서 이름을 얻게 된다. 성호집안을 사림계로 전환시키면서 가문을 일으키고 성호학 성립의 토대를 닦은 인물은 성호에게 증조부되는 李尙毅였다. 그는 벼슬로도 좌찬성에까지 올랐지만 선조연간 동서인 분당시 동인, 다시 북인을 거쳐 인조 이후는 남인으로 활동했는데 정치적 활동보다는 혼인을 통한 인맥구축에 더욱 힘썼다. 그 결과 7남 4녀의배우자들은 대부분 당대의 명문가자녀들이었다. 이런 인맥이 효종에서 숙종연간에걸치는 17세기 동안 그 후손들의 정치와 학문활동에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가문적 배경은 때로 그 부친 李夏鎭의 남인관료로서의 활동과 仲兄 李潛의 집권노론공격상소처럼 성호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 막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성호로 하여금 李元鎭이나 柳馨遠 許穆과 같이 인맥으로 맺어진 학문적 전승을가능하게 하고, 성리학에 토대하면서도 선진유학으로부터 유래한 실용의 경세치용학에 힘쓰게 해 실학을 배태하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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