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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7권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491 - 511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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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해공이 27년간 중국을 무대로 전개한 독립운동을 재조명한 것이다. 그가 남긴 독립운동의 자취는 다양하고 열정적인 것이었다. 민족독립을 위한 길이라면 사상과 방략도 가리지 않았으며, 누구보다 실천적 의지가 강한 해공이었다. 임시정부 수립의 기반을 다지는데 혼신을 기울이다가, 대통령불신임으로 독립운동계가 혼란에 빠지자, 과감하게 상해를 떠나 무력투쟁을 위한 길로 나섰으며, 1930년대 일제의 중국침략으로 동북아시아가 검은 구름으로 휩싸일 때 민족혁명당과 조선청년전위동맹과 같은 좌파 노선에도 귀를 기울이던 그였다. 그러나 그는 어느특정의 노선이나 방략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1930년대 후반 그가 독립운동계의 전선통일을 위해 매진했던 것은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해공의 독립운동은 사상과 방략이 다양했던 만큼이나 활동의 폭도 넓었다. 연령으로 볼 때 독립운동 3세대로 분류되는 해공이었지만, 2세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임시정부 수립에 힘을 기울였는가 하면, 1930년대 독립운동계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3․4세대 독립운동자의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의 활로를 모색하는데 앞장 서나갔다. 1942년 독립에 대한 희망이 엿보이는 가운데, 그는 오랫동안 떠나있던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이무렵 임시정부는 오랜 유랑생활을 마치고, 중국 중경에서 새롭게 독립운동의 지도력을 회복하던 때였다. 임시정부에서 내무부장을 맡은 그는 임시정부의 살림을 책임맡았다. 중경시절 독립운동의 결실을 일구기 위해 힘을 쏟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했으나, 임시정부는 해방된 조국에 임시정부의 간판을 내세우고 돌아올 수 없었다. 미군정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개인 자격으로 환국할 수 밖에 없었지만, 무대를 고국으로 옮긴 그는 제2의 독립운동으로 건국운동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갔다. 이러한 독립운동의 정신과 유산은 한국 민족운동의 원류를 이루며, 해방 후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초석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민족 독립과 건국, 민주주의 수호에 일생을 바친 그의 자취는 곧 한국근대사의 소중한 귀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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