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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85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461 - 49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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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이 1차 유학 시절 관심을 갖고 고민하던 다양한 논제들이 체계를 갖추고 명확히 드러나게 되는 것은 그가 귀국을 한 이후부터이다. 그의 초기 사상과 문학관의 맹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1920년 이전 유학 시기의 산문들이지만, 그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는 글들은 1920년 이후에 주로 쓰인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염상섭의 초기 사상과 문학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학 이전과 이후를 분리해 살피기보다는, 이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서 파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염상섭과 나혜석의 교류가 시작된 시기를 염상섭이 게이오대학으로 진학한 1918년 봄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의 교류는 이보다 훨씬 더 빠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우선 『여자계』 제2호의 원고 수합 일자로만 미루어 보아도 두 사람의 교류가 시작된 것은 염상섭의 게이오대학 진학보다 최소한 6개월 이상은 빠른 시기였다. 염상섭과 나혜석이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기존의 연구에서는 나혜석의 약혼자 김우영과의 관련성을 지목한 바 있다. 그러나 자료들에 근거한다면, 염상섭과 나혜석의 교류는 김우영이 아니라 나혜석의 오빠 나 경석을 매개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교류가 시작된 때는 나혜석이 도쿄에 도착해 사립여자미술학교에 입학한 시기인 1913년 무렵으로 보인다. 염상섭의 초기 문학관과 문단 활동을 이해하는 데는 나혜석과 나경석 두 사람과의 연결 고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자계』의 필자들이 『학지광』의 필자들과 대부분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달리 염상섭은 1910년대 『학지광』의 주도 세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문필 활동을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그가 이 시기 부르주아 민족주의 우파 그룹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문필 활동을 했다는 사실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광수와의 관계도 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염상섭이 초기 산문 전반에 걸쳐 드러냈던 가장 큰 관심사는 여성문제였다. 아울러, 그가 초기 산문을 통해 제안했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자유의 획득과 해방의 실현이었다. 염상섭이 다양한 산문들을 통해 조선 여성의 삶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선의 여성들이야말로 자유와 해방이 필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염상섭은 조선에 산재한 여성문제 해결의 길이 단지 여성 자신의 각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성이 가능한 사회적 여건의 조성에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노동 문제에 대한 해결의 길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염상섭에게는 조선의 여성문제와 조선의 노동문제는 동일한 근원에서 출발하고 동일한 처방을 필요로 하는 사안들이었다. 염상섭의 초기 산문에서는 논리보다는 현실에 대한 표현의 욕망이 더 앞선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현학적 지식 혹은 논리의 과시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그로 하여금 문장을 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修辭가 거세된 소박함과, 우회보다는 직설적 표현을 선호했던 그에게 논쟁은 피해갈 수 없는 부산물이기도 했다. 염상섭은 현실을 간과한 논리의 전개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글쓰기에 대해서는 크게 혐오했다. 현상윤과의 논쟁이 전자의 사례에 해당한다면, 김환 및 김동인과의 논쟁은 후자의 사례에 해당한다. 염상섭의 평론은 문학원론보다는 작품 평에 집중되어 있다. 이론비평보다는 실천 비평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 역시 그가 이론보다는 현실에 대한 관심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염상섭이 비평을 통해 작가들에게 요구한 것은 깊은 사색의 과정을 거쳐 큰 사상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염상섭은 고뇌하는 과정을 거쳐 확장되고 완성된 자아가 얻을 수 있는 가치가 眞善美라고 생각했다. 진선미가 인류 최고의 가치, 지상의 일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고뇌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염상섭이 추구하는 문학은 진선미를 함께 추구하는 예술 양식이기도 하다. 동시대의 문학가들이었던 이광수와 김동인이 진선미, 특히 그 가운데서도 善과 美를 선택의 문제로 파악했던 것과 달리 염상섭은 이를 하나의 통합된 가치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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