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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8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7 - 54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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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愭의 생애는 선행 연구에서 전반적인 면모가 대체적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꼭 조명되어야 할 삶과 교유에서의 주요 국면이 다수 누락되었고, 그의 삶이 가지는 의미의 재조명도 필요하다. 본고는 이러한 목적에서 집필되었다. 윤기는 평생 지독한 가난으로 집 한 칸 변변히 마련하지 못해 생애의 대부분을셋방살이로 전전했다. 이사만 스무 번 가까이 하였는데 대략 4~5년마다 옮겨 다닌셈이다. 윤기가 전전했던 마을은 義洞과 蓮花坊시절을 제외하면 대체로 남대문 밖에서 서대문 밖으로 이어지는 窮巷이었다. 윤기가 살았던 시대는 집안이 한미한 사람은 文科에 급제하기가 극도로 어려웠고, 문과에 급제하더라도 관직에 진출하면 부와 명예를 모두 이룰 수 있었던 조선초기와 현저히 달랐다. 관직에 진출하여 당당히 사대부가 된 뒤로도 무너진 집안의위상은 회복되지 못했고, 고단한 생활상은 常民보다 못한 처지가 되었다. 윤기의 삶곳곳에서 양반 사회 붕괴와 해체의 징후를 읽을 수 있다. 노년의 윤기는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科擧制度에관심을 가지고 부정의 양상과 비리를 고발하였다. 69세에 과거장의 청탁과 농간에대해 3편의 시를 지었다. 73세에는 大司成韓致應(1760~1824)에게 편지를 보내어 폐단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하였고, 74세에는 두 차례에 걸쳐 과거제의 문제점,관리들의 비리와 청탁, 과장 안에서 벌어지는 각종 부정행위 등을 두루 고발하였다. 이후로도 ‘科說’이란 편명으로 거의 매년 과거제의 폐단과 과거장의 百態를 고발하였다. 그의 학문 세계는 스승 星湖李瀷(1681~1763)과 관련해서 생각할 수 있다. 윤기는 星湖만년에 세 차례에 걸쳐 찾아뵙고 小學問目을 올려 질정받았다. 또 天圓地方說의 예에서 보듯 윤기는 성호의 학문과 실학적 사유를 계승하였음이 분명하다. 윤기는 西學에 경도되는 대신 東人意識을 자각하고, ‘일상에서의 합리적(과학적) 사유의 훈련’이란 측면에서 성호의 학문을 계승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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