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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8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37 - 277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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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극예술연구회 제1기의 번역극 공연인식의 확립과 실천 과정을 검토하고,그 결과가 지닌 의미를 분석해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극예술연구회 제1기는 1932년 5월부터 1934년 12월까지이며, 11편의 번역극과 2편의 창작극을 공연하였다. 극예술연구회의 창립 배경에는 홍해성의 ‘틀 짓기 전략(framing strategy)’이 있다. 1930년 6월에 일본에서 귀국한 홍해성은 기존 극단을 통해 식민지조선의 연극계에 안착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는 식민지조선에서 그동안 이루어진 근대극운동을 ‘타락한 근대극운동’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근대극운동’을 추진할 적임자로자신을 부각시키는 ‘틀 짓기 전략’을 구사하여 지지 기반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극영화전시회의 성공이 계기가 되어 설립된 극예술연구회는 번역극 공연을 통한 식민지조선의 근대극 창작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식민지조선의 근대극운동을 부정했던 홍해성의 틀 짓기 전략을 동인들이 수용한 것이다. 번역극 공연에 치중한 극예술연구회 제1기는 ‘구심적 번역극 공연’의 시기였다. 구심적 번역극 공연 활동의 핵심은 근대극의 정전(canon) 제시이며, 이를 통해 식민지조선 연극계 전체에영향을 미치겠다는 입장이었다. 극예술연구회 제1기의 번역극 공연은 그들의 목표와 어긋나는 결과를 낳았다. 근대극 형성기의 고전적 번역극의 경우에는 새로운 해석이 부재하였고, 근대극 발전에기여가 큰 작가를 선택하고도 주변적인 작품을 공연하였으므로 정전의 제시라는 목적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창립 당시에 내세웠던 ‘연구와 실험’ 정신은 점점 퇴색하였고, 그들이 경계하고자 했던 대중추수적 태도는 조금씩 강화되어갔다. 극예술연구회 제1기는 서양 근대극 성립기의 중요한 작품이나 작가를 소개한 성과를 거두기는 하였으나, 식민지조선 근대극에 변화를 만들어 낼만큼의 큰 성과는거두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번역극 공연 인식이 일본이 선별하여 번역한 근대희곡의 틀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어문학을 전공한 동인들이 많았으나, 식민지근대극운동의 주체적 입장에서 적절한 작품을 골라 현재적 의미가 강한 공연물로 만들어내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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