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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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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65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29 - 16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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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장로교 한국선교회 내의 서울지회와 평양지회 선교사들은 서로 경쟁해오다가 세브란스병원 건립문제를 계기로 1900년 말부터 크게 충돌했다. 평양 측은 의사가 두 명 이상 있는 큰 병원을 결코 허용할 수 없고, 한국인 의사를 양성하는 일과 의학컬리지의 설립도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의료사역이 복음전파를 위한 쐐기의 역할에 불과하므로 의료가 성행하면 전도사역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보았다. 또한 중국을 비롯한 다른 선교지의 교회가 자급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그곳의 선교사들이 학교와 병원 등의 기관들을 세워 서구의 부를 과시했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자급정책을 성공시키려면 기관사역을 교인들의 경제수준에 맞춰 최대한 소규모로 시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에 서울 측은 의료사역을 복음의 실천행위이자 기독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로 보았다. 곧 전도와 의료가 같이 간다고 보았다. 자급정책은 많은 지원이 필요한 의료분야의 특성에 맞춰 유연한 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의료사역이 한국인들에게 연장될 수 있게 한국인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선교회 안에서 평양 측의 반대주장이 우세했으나 1904년 11월 16일에 병원이 개원되고, 새 의사가 부임하고, 의학교육이 허용되어 최종 승리는 서울 측의 것이 되었다. 이 모든 논란은 1904년에 조정된 내부규칙에서 의료사역의 기본방침이 확정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평양 측이 강조한 ‘전도 우선’, ‘의사 한 명이 있는 규모의 병원 운영’, ‘자급 운영’의 기본 틀에 서울 측이 강조한 ‘의료사역의 발전 인정’, ‘의학교육 실시’가 더해진 형태를 이루었다. 또한 그들은 문서로 인쇄되지 않은 새로운 선례들을 갖게 되었다. 새 선례들은 세브란스병원처럼 한 병원에 두 명 이상의 남자 의사를 두는 경우를 허용한 것과 자급문제에서 본토인의 후원능력을 뛰어넘는 분야는 외국돈을 끌어들일 수 있게 한 것이었다. 후자는 이후에 대학을 포함한 상급과정 학교건립에도 영향을 미쳐 더 스스럼없이 외국인의 기부를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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