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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58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311 - 34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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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 극장은 조선 민중에게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전쟁이 끝나고 식민지체제가 해체되면서 그들은 극장이 예전처럼 그들의 공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방기 극장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적인 공간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우선 일본식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의안 반대 같은 사안에 동참하거나 “건국 성금” 모금, “갱생 휴지 상자” 설치를 통한 자원 재활용 운동 등을 실시함으로써 당대 민중의 민족주의적 열기를 받아 안으려고 하였다. 일본인 극장주가 떠난 자리를 조선인 지배인들이 차지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해방기 극장이 부닥친 가장 큰 어려움은 상영할 영화 필름이 부족했다는 사실이다. 해방기 극장은 이미 한 차례 이상 상영된 영화를 재상영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영화배급사(이하 ‘중배’)가 본격적으로 영화 배급을 시작하면서 영화계는 새 출발에 대한 기대로 들뜨기도 했지만, 중배가 극장 측에 제시한 강압적인 조건들은 영화계의 공분을 샀다. 그 당시 영화인들은 미국영화가 영화계를 다시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악극이 극장을 공유하고 있던 시절 중배의 배급 조건은 민족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볼 수 없었던 매우 폭압적인 이러한 배급 조건에 맞서 극장 측은 단결해서 맞섰고 이에 부담을 느낀 중배는 요구 조건을 완화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필름 수급상의 곤란과 더불어 영화요금 문제도 해방기 극장에는 큰 문제였다. 중배가 폭압적인 조건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더해 해방기에 인플레도 극심했기 때문이다. 여기다가 세수 확충을 위한 입장세의 인상은 영화요금의 상승을 더욱 부채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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