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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64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29 - 257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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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군대, 그리고 식민자들의 이주와 함께 추진된 식민화가 식민지 원주민에게 문화적 충격을 준 것 중 하나는 공창의 도입 등 새로운 형태의 성 산업의 이식과 확대였다. 매춘을 핵심으로 한 성 산업은 식민자들만 아니라 조선인들의 참여가 권장될 정도로 확대되었으며 그 심화의 과정은 생활세계를 변형시켰다. 그렇다고 인쇄매체나 음반, 공연미디어 등을 통한 식민지 원주민들의 섹슈얼리티의 표현이 장려된 것은 아니다. 섹슈얼리티의 표현은 사회주의 등 급진사상의 표현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억제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구상되었다. 이 글은 우선 식민지 섹슈얼리티 표현의 양상을 검열기록인 『조선출판경찰월보』와 『조선총독부금지단행본목록』을 통해 살피고자 했다.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표현에 대한 제한에 중점을 둔 풍속괴란 검열이 본격화된 것은 『조선출판경찰월보』가 발행될 시점인 1928년 말부터였으며, 1930년대 전반기 풍속괴란을 이유로 행정처분을 받은 출판물이 급증한다. 그 출판물의 95% 이상이 일본에서 들어온 출판물이었다. 이 시기는 소위 일본의 에로-그로-넌센스 문화가 식민지 조선에도 『별건곤』과 같은 매체를 통해 유입되었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런데 『신생활』, 『개벽』의 폐간이 이루어졌던 시기는 사회주의 운동이 급격히 지하조직을 매개한 대중운동으로 전격적으로 전화한 시기이기도 하다. 즉, 식민지에서 에로-그로 문화는 치안유지법 위반자가 급증하던 대중운동의 시대와도 동시대적이었던 것이다. 이는 맑스 보이가 에로-그로 문화의 세례를 통해 핑크보이로 전환하거나, 에로-그로 문화가 맑스 보이들의 전향의 표지일 수 없었던 식민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치안방해에 의해 처분된 출판물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식민지 검열의 추이는 식민지 조선인들은 반제국주의적 출판물의 생산자일 수는 있었어도 근대적 인쇄기술에 기반한 포르노그라피의 적극적 생산자는 아니었음을 말한다. 즉 사회주의자를 의미하는 ‘아카’(あか,赤)가 되는 것보다, 성적 쾌락의 탐닉을 의미하는 ‘핑크’, 모모이로(桃色)가 되는 것이, 아니 더 적확하게는 핑크의 삶을 그 자체로 의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표현과 서사의 창출은 더욱 어려웠다. 식민지에서 에로티즘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성적 표현은 민족주의적 대의나 식민지적 근대의 규범의 심판이나 징벌을 수반할 때만 서사화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유곽과 카페에서의 에로-그로의 생활을 성불능이란 메타포로 서사화한 이상이 동경(東京)의 거리에서 불령선인으로 체포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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