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한국문화연구 한국문화연구 제20권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39 - 172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895년 한국 최초의 국사교과서인 󰡔조선역사(朝鮮歷史)󰡕가 학부(學部) 주도로 편찬된 이래 1910년 한일병합 때까지 약 20여 종의 국사교과서가 간행되었다. 국사교과서의 근대사 서술에 나타난 대외인식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우선 중국에 대하여 정치적 주권 확립을 주장하면서도 전통적 유교사관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 중국에 대하여서는 지나치리만큼 독립을 강조하면서도 일본에 대해서는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사학의 무비판적 수용이라는 비판을 받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일본의 영향을 받아 교과서의 내용이 상당부분 왜곡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08년을 기점으로 통감부는 노골적으로 교과서정책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교과서의 내용도 시기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나타냈다. 청은 무능하고 부패하며 조선을 압제하는 존재로서의 이미지가 강화되는 한편, 일본은 우호와 선진적 존재 심지어는 구원의 존재로서 이미지가 미화되고 있다. 러시아로 대표되는 서양에 대해서도 열강의 각축을 견제할 수 있는 존재에서 결국은 한국을 삼키려는 백인종으로 묘사되면서 일본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교과서 내용상의 한계는 통감부의 통제정책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진화론과 일본 역사서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았던 저자들의 상황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국사교과서의 편찬을 주도했던 대표적 인물들은 현채, 정인호, 류근, 안종화 등으로서, 당시 애국계몽운동을 펼치던 지식인 계층이었다. 한말 국사교과서는 편찬 당시나 지금이나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자국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체계화하려 한 점, 근대 역사학의 새로운 체제를 도입했다는 점, 자주의식 확보에 노력했다는 점 등은 간과되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따라서 한말 역사교과서는 사회진화론에 경도되었던 지식인들이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술한 과도기적 교재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1)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