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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대동철학회 대동철학 대동철학 제59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 - 22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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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화론은 목적론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윈과 라마르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용불용설이 아니라 목적론에 있었다. 진화라는 관념에 그 둘은 일치했지만 다윈은 라마르크의 목적론적 설명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윈에게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연구자들은 여전히 진화론을 목적론적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가까운 목적을 긴 목적으로 확대적용하는 ‘목적론의 적용오류’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내 삶의 목적을 내 종의 목적으로 해석한다. 최재천이 윌슨의 통섭이라는 말을 통해 기도하는 것은 생물학에 의한 모든 학문의 통합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 개념을 전체주의적이고 패권주의적이라고 생각해서, ‘통섭’(統攝)은 ‘통섭’(通涉)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윌신의 지지자만큼이나 윌슨의 반대자는 많다. 사회생물학이 사회진화론은 아니지만 사회생물학이 지니고 있는 목적론은 진화론을 강자의 논리로 이끌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진화의 아주 짧은 부분인데도, 진화라는 말을 빌려 적자생존의 이론에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다. 멸종된 생물이 생존한 생물에 비해 열등하리라는 생각은 인간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이 선택했을 뿐이지, 그것이 못났기 때문이 아니다. 노자가 말했듯이, 자연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인류는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고, 인간의 자유는 자연의 필연과 마주하며, 진화의 무대는 세계가 아니라 시간이다. 과학이 중립적이라는 생각은 신화에 가깝다. 다윈의 개념들은 각기 스펜서, 스미스 그리고 맬더스에 빚지고 있다. 과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진화론을 놓고도 생물학계는 양분되고 있다. 윌슨과 도킨스의 반대편에는 굴드와 르원틴이 있다. 현대생물학은 여전히 문화와 후성유전 그리고 가소성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서양철학은 성악설을 그 주류로 삼는다. 다윈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이론은 어쩔 수 없이 투쟁, 이기심 그리고 멸종이라는 관념에 기대고 있다. 비록 사회진화론이긴 하지만, 진화론을 가장 잘 이용했던 사람들은 나치와 일본제국주의자였다. 조선은 그렇게 수탈되었다. 진화론은 서구의 실체론적 사고에 도전하는 것이며 어떤 종도 목적을 갖고 완전태로 나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여 우열을 나누지 않는다. 자연선택에는 서열과 최적화가 없다. 진화론은 진행형이다. 진화론이 문제가 아니라 목적론이 문제다. 사회는 목적이 있어도 자연에는 목적이 없다. 진화론에서 목적론이 배제될 때 우리는 사회학이 아닌 생물학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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