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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14권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71 - 10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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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에 그려진 존상이 누구이며 어떤 조형적 특징을 지니는 가를 밝히는 것은불교미술사 연구에 있어 필수 절차처럼 인식되어 왔다. 존상의 명칭과 도상의 의미는 회화적 구성 요소와 제작 시기를 밝히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때문이다. 여기에 불화를 조성한 이후 남긴 기록이 전한다면 불화를 이해하는 데있어 결정적인 자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어떤 기록은 불화를 조형적 측면에서 이해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여러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게 만든다. 혹은 그림의 요소가 스스로 말해주는 도상적 특징과 작품에 남겨진 명문이 일치하지 않아 혼란을 주는 경우도 있다. 1673년에 조성된 <長谷寺 靈山大會掛佛幀>은 명확한 도상적 특징과 화면의 旁題, 불화를 완성한 이후 남긴 畵記까지 남아 있음에도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었다. 화면의 방제는 주존이 ‘彌勒尊佛’로 기록되어 있으나, 화기에는‘靈山大會掛佛幀’을 조성하였다고 하여 주존이 석가모니불임을 나타내었다. 이불화가 석가모니불의 설법회인 영산회도로 조성되었다는 점과 미륵존불이라는방제의 기록은 모순되는 정보로 인식되었다. 그간의 논의는 화면의 기록을 따라미륵의 설법회로 볼 것인가, 혹은 화기의 기록에 의거하여 석가모니불의 설법회로 볼 것인가 하는 두 가지 견해로 나뉘었다. 본 논문은 장곡사의 연혁과 괘불을 조성하던 시기의 정황, 그리고 괘불의 구성과 회화적 요소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장곡사 괘불>의 중층적 구성이 조성 당시부터 의도된 것임을 논증하였다. 「詳校正慈悲道場懺法」, 「靈山大會作法節次」 등의 의식집을 통해 석가와 미륵불의 두 존상을 함께 신앙해온 전거를 제시하고, 화면 구성과 등장 권속의 조합을 통해 도상적인 타당성을 규명해 보았다. 龍華會와 靈山會의 결합은 석가모니불과 미륵불을 함께 봉청하는 신앙 의례에 근거하고 있음을 입증하였다. 기념비적인 대형 불화를 두고 우리가 가졌던 혼란은괘불에 도해된 주존이 하나이며, 석가모니불과 미륵불을 별개의 존재로 가정해온전제에서 비롯되었다. 괘불을 걸고 의식이 진행되는 장곡사의 의식도량은 전생의善을 쌓아야 참석할 수 있는 영산회와 현재의 因으로 참석할 수 있는 용화회에 모두 참석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의식의 성격을 반영하던 上壇에 대한 勸供 절차는 점차 「法華經」의 고유한 성격에 의해 의식을 정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통합과 변모의 시기를 맞게 된다. 1652년에 碧巖 覺性이 교정을 본 「五種梵音集」에는 미륵불화를 걸고 영산작법을 진행한 사찰을 잘못된 사례로 지적하면서 의식에는 영산회상도를 헌괘하여야 함을 밝혀 놓았다. 두 존상의 공존이 자연스럽게 수용되던 단계에서 교리적인해석이 변화되는 것이다. 18세기 이후 괘불의 조성은 전국적으로 확산되나, 미륵괘불로 기록된 조형 예가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의식의 변화는 불화 조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장곡사 괘불>은 조선후기에 정립되어 가는 영산작법의 통합 논의에 있어 그 과도기에 존재했던 신앙 경향을 보여주는 불화임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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