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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18권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97 - 12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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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고에서는 중국화된 관음보살의 대표적 예인 白衣觀音에 관한 여러 사항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나라에서 백의관음을 어떻게 수용하였는지 규명해보고자하였다. 백의관음의 名號와 服飾은 밀교경전에서 설하고 있지만, 머리서부터 白衣로전신을 감싼 백의관음상은 중국에서 唐代 후반기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백의관음상은 대부분 五代부터 보이며, 宋代에는 禪宗의 흥성과 더불어더욱 유행한 듯하다. 白衣는 여러 형태로 표현되었는데, 唐宋代 부녀자의 복식을비롯하여 승려의 법의인 가사와 관련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백의관음이 宋代에 여성화되면서 이후 送子觀音 信仰을 갖게 되고, 明代에는이러한 양상이 보편화되는 것은 관음신앙에서 매우 중국적인 특성이다. 경전과영험담, 그리고 작품을 통하여 그러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求子신앙은 관음의 한 공덕으로 「普門品」에서 설하고 있지만, 백의관음이 중국에서 僞經까지 창안하면서 송자신앙의 대상으로 독자화되는 것은 주목되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백의관음상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전하고 유물도 남아 있다. 그런데 고려에서는 복식에 상관없이 觀音菩薩을 “白衣”로 호칭한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점은 백의관음을 「보문품」의 관음과 동일시하였음을 말해주며, 중국의 백의관음신앙과 차이를 보여주었다. 관음보살은 또한 水月과 大悲로도 불렸으며, 李奎報의 문장은 세 명호가 함께 나타난 좋은 예로서 모두 관음보살을 대신하는 명호임을 밝힐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女性形의 관음상은 보기 힘들고, 送子觀音 도상의 작품 또한 영세하게 남아 있다. 송자관음은 주로 三才圖會에 전거한 도상을 표현하였는데,이들 관음도를 살피면서 대부분 求子신앙이 내포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그 배경에 대해 우리나라 전래의 민간신앙, 특히 三神信仰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白衣觀音은 대개 送子觀音으로 진화되고 신앙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보문품」 관음이 백의를 입은 한 도상으로 수용되었다. 送子觀音像 또한 새로운 도상으로 조선말에 일부 시도되었다. 이 점은 중국적으로 변모된관음이나 신앙에 배타적이었음을 시사해주며, 우리나라에서 백의관음 名號는 부르고 造像하였으나 특정한 백의관음신앙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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