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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16권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43 - 16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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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은 불교세계의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호국호법의 천신으로 동방의 지국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북방의 다문천왕을 말한다. 사천왕상의 대좌는 생령좌, 연화좌, 운좌, 암좌, 천의좌등이 있다. 생령좌는 천인, 인간, 아귀, 축생 등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을 대좌로 사용한 형식이며, 조선후기 사천왕 조각상의 대좌는 오직 생령좌로만 나타난다.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생령좌는 16세기 중반(1515)부터 18세기 전반(1725)까지14개 사찰 총 94개 작품이 남아있다. 전라도를 비롯하여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등 전국 각지에 현존하며, 제작방법은 목조와 소조이다. 조선후기의 생령좌는 한 쌍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대형의 사천왕상을 제작하면서 안정성과 파손 방지를 위해 좌상으로 제작하였고, 생령좌를 다리에 인접하여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인간의 모습을 한 인간형 생령좌가 사천왕의발아래에 나타난다. 인간형은 관모나 상투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양반이거나 여인 및 서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야차형은 머리에 뿔이 솟아 있거나 이빨이 튀어나온 험악한 형상이다. 16세기와 17세기의 생령좌는 대부분이 야차형이고, 18세기에는 인간형의 모습이 많이 조성된다. 18세기에 인간형 생령좌가 증가하는 이유는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양반이나 탐관오리에 대한 비판과 경계의 의미로 사천왕의 발에 밟힌 인간형 생령좌가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생령좌는 무릎을 꿇은 자세와 밟혀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16세기와 17세기 중반 이전의 생령좌는 왼쪽 다리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생령좌와 오른쪽 다리 아래에 밟혀 있는 생령좌가 조성된다. 17세기 후반에는 그반대의 형태인 오른쪽 다리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생령좌와 왼쪽 다리 아래에밟혀 있는 생령좌가 등장한다. 18세기에는 상기한 두 자세가 혼합되어 나타나는양상을 보인다. 또한, 사천왕상의 생령좌에도 봉함목과 지물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봉함목이 있는 생령좌가 사천왕상의 다리를 받들고 있는 모습에서 하위 신으로써의 생령좌가 사천왕을 받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생령좌는 사천왕을 떠받들고 있는 하위 신으로 천인에서 축생까지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표현한 것이다. 하위 신으로써 사천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던 생령좌는 조선후기에 그 의미가 확대된다. 즉, 악한 인간을 응징하고 복속시키는 의미가 추가되어 새로운 도상인 인간형 생령좌가 등장하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다리를 받치는 생령좌는 사천왕상을 받들고 도와주는 역할을 표현한 것이고, 밟혀있는 생령좌는 사천왕에게 굴복하여 복종하는 모습이다. 사천왕은 바로 이런 악함과 욕심을 표현한 생령좌를 조복시키는 모습을 통해 천왕문을 지나는 신도나대중이 자신의 사악함을 뉘우치고 경계하며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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