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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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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6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49 - 7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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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원(洪柱元, 1606-1672)은 당대 명문가인 풍산 홍씨 출신으로, 17세 때 정명공주(貞明公主)와 결혼하여 영안위(永安尉)에 봉해졌다. 비록 벼슬을 할 수 없는 부마의 위치에 있었으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네 차례 중국으로의 사행에 정사(正使)로 다녀왔던 일이다. 규장각 본 7권에는 연행에 다녀오면서 지은 시를 모아놓은 「연행록(燕行錄)」이 실려 있다. 『무하당유고』의 여타 시와 비교하여 개인적인 감정과 역사적인 인식을 드러내기 때문에 홍주원의 내면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그의 『연행록』은 지배층의 의식구조 흐름을 살피기에 적합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그의 사행시를 살펴보면, 횟수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양상이 보인다. 1647년 첫 사행에 임했던 시기 왕명을 완수해야 하는 사신으로서의 책임감과 함께 청나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명나라에 대한 회고가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리고 1653년 세 번째 사행 때의 시는 직접적인 분노와 비판이 약화되고 먼 길을 떠나온 나그네로서의 회포가 좀 더 강해지는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1661년 마지막 사행에서는 외조부 이정귀(李廷龜)의 시법이 차용되어 시적 함축성이 높아짐과 동시에, 차운시를 통해 중국의 경물을 새로이 발견하고, 이전의 “哀怨”이 승화되어 경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특성을 볼 수 있었다. 사행은 새로운 경물을 통해 시적 영감을 일으키는 경험이기도 하였지만 선인의 시를 따라 문학적인 성취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였다. 홍주원의 연행시는 초기에 이루어진 연행시인 만큼 사행시에 대한 문학적 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해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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