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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각사상연구원 대각사상 대각사상 제23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65 - 9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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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는 백용성의 선농불교에 대해 교단사적 측면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인도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出家者(pavrājita)는 육체적 노동과 일체의 생산활동에 종사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승려도 노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勞動禁止에서 勞動獎勵로의 전환은 서양의 종교개혁에 比肩할 만하다. 하지만 교단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승려의 勞動禁止에서 勞動獎勵로 변한 것은 ‘戒律變移’를 의미한다. 중국에서 노동과 수행을 병행한 전통은 이미 東晉시대부터 형성되었다. 다만 선종에서 禪農兼修의 전통은 東山法門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선농겸수의 전통은 南嶽懷讓과 馬祖道一을 거쳐 百丈懷海로 이어졌다. 이러한 선농불교의 전통이 한반도에도 전해졌다. 근대한국불교에서 선농불교를 몸소 실천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白龍城과 白鶴鳴이다. 두 사람은 모두 禪師로서 자급자족을 통해 선불교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백학명의 선농불교는 禪院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납자들이 선수행을 하면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백용성의 선농불교는 불교교단의 경제적 자립을 통해 당시 핍박받고 있던 민중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선농불교는 그 스케일과 차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백용성은 禪農을 농사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는 승려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경제행위이든 선농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가 생각했던 선농은 근본적으로 무위도식하지 않고 자력으로 생활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었다. 백용성은 선농불교를 통해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소비하는 불교’에서 ‘생산하는 불교’로, ‘依他的인 삶’에서 ‘自利的인 삶’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그는 재화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두 선농불교의 개념 속에 포함시켰다. 이것이 바로 생산 불교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는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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