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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49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325 - 35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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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초기에 편찬된 兵書를 통하여 지식인들의 兵學 사상을 개괄한 것이다. 선초는 대외적으로는 남북으로 外勢를 극복하고, 대내적으로는 새로운 王朝의 기반을 확립하는 상황이었으며, 이것은 병서 간행에 있어서도 전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의 병서는 병학 자체의 정립 목적과 아울러 麗末의 武將이자 朝鮮의 開祖로서 활약상을 반영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고려하고 있다. 선초에 출간된 병서는 일부 전쟁사 기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武經七書와 그 주해에 근거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병학 정립의 시급성과 아울러 우리나라 고래의 병서가 전해지지 않았던 데 원인이 있다. 그러나 당시 지식인들은 무경칠서를 權謀詭計에 치우친 것으로 평가하고 유가적 입장에서 병학을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로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의 地理的 차별성이 병학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병학과 陰陽家, 병학과 儒家와의 관계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선초의 병서에서는 무엇보다 장수의 文武兼全의 리더십과 군대의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현실적 측면에서 禮樂과 兵刑의 兼用을 강조하고, 荀子의 ‘附民’(壹民)의 사상을 대량으로 援用하고 있다. 이 점은 중국의 兵家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성리학의 정립 과정에서 맹자를 전제로 하는 것과는 다른 경향이다. 요컨대 선초 지식인들은 文武竝用이라는 전제하에 병학을 유가의 聖賢과 연계시키고, 양자의 접합점으로서 仁義, 禮樂, 忠孝, 三綱, 五倫 등의 덕목을 들고 있다. 특히 병학을 유가의 삼강이나 오륜과 연계시키는 것은 중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며, 한 마디로 조선 초기 병학의 특징은 ‘兵學의 倫理化’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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