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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사학회 역사학연구 역사학연구 제66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 - 3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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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시조로는 東明, 溫祚, 優台, 沸流, 仇台, 都慕 등의 다양한 인물들이 전해진다. 백제의 시조 전승이 다양한 원인을 각 시조 전승의 등장 시기와 배경 등을 통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백제의 시조 전승은 크게 동명-온조 전승, 우태-비류 전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동명 전승은 범부여계의 시조인 부여의 동명으로 이는 일본에 전해지는 백제 시조 도모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태-비류 전승은 다시 구태 전승으로 변개되었다. 『續日本紀』의 도모 전승은 동명신화가 시기에 따라 두 가지 양상으로 변화ㆍ전개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속일본기』 桓武 延曆 9년의 백제 도모 전승은 동명신화의 초창기의 원형으로, 환무 연력 8년의 백제 도모 전승은 동명신화의 후대적 모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동명신화는 초창기에는 단순히 기의 감응, 태양신의 감응 단계에서 후반기 천신과 하백녀의 결합 구조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속일본기』의 기록에는 이 두 가지 유형이 모두 나타났으며, 「扶餘隆墓誌銘」의 내용은 후반기에 해당하였다. 한편 『삼국유사』 북부여, 동부여조의 내용을 통해 고구려 朱蒙의 계보가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북부여조의 解慕漱-解夫婁의 부자관계가 고구려조에는 해모수-주몽(동명)의 부자관계로 설정되었다. 해부루의 계보는 북부여의 정통인 해모수와는 단절되었고, 백제의 우태-비류 전승으로 연결되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온조 즉위년조의 시조 동명-온조 전승과 우태-비류 전승은 각각 별개의 전승으로 있다가 해모수-해부루-우태-비류의 계보가 형성된 이후 동명-온조의 가계와 결합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우태-비류 전승이 동명-온조 전승보다 후대의 것으로 볼 수 있다. 우태-비류 전승은 비류왕, 비유왕의 예처럼 방계로 왕위를 계승한 왕들의 정통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등장한 시조 전승으로 파악할 수 있다. 즉 우태-비류 전승은 동명-온조 전승과 별개로 각각 존재하다 『書記』의 편찬 무렵에 온조 전승과 결합하여 온조ㆍ비류의 형제관계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 형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온조와 비류 형제설화로 파악된다. 시조 우태-비류 전승이 백제 시조로 전면에 부상한 시기는 고구려의 부여 병합, 주몽의 동명성왕 추증으로 부여계승 의식이 확보되는 문자명왕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급변하는 대외관계 속에서 백제의 시조 동명의 위상은 퇴색되며, 새롭게 시조로 등장한 이가 우태였을 것이다. 중국의 사서들에 우태 대신에 구태가 기록된 것은 백제의 정치적 의도로 파악되었다. 먼저 우태는 중국 역사서들에 기록된 고구려의 관등명인 우태와 동일하였다. 중국의 사서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던 백제인들로서는 그들의 시조 우태를 그대로 중국에 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태는 또한 중국 사서의 부여왕 尉仇台를 연상시켰다. 우태는 구태로 중국 사서에 백제 시조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백제는 구태를 통해 마한고지보다 확장된 출자관인 대방고지를 관념적으로 획득하게 되었다. 이런 관념은 그대로 중국의 국가들이 백제왕들을 대방군공, 혹은 대방군왕으로 책봉하는 책봉명으로 확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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